“범과 표범의 새끼는 아직 무늬가 생기기도 전에 벌써 소를 잡아먹을 기상이 있다.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깃털과 날개가 온전해지기도 전에 벌써 세상의 모든 바다를 날아 건널 마음이 있다.”(虎豹之駒, 未成文而有食牛之氣; 鴻鵠之鷇, 羽翼未全而有四海之心.) <시자>(尸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린이의 기상이 비범하다는 뜻의 ‘식우지기’(食牛之氣)나 ‘장기탄우’(壯氣呑牛, 소를 삼킬 굳센 기상)같은 표현은 여기서 왔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친구의 두 아들에 관해 쓴 ‘서경이자가’(徐卿二子歌)란 시에서 “둘째 아이는 다섯 살인데 벌써 소를 잡아먹을 기상이 있다”(小兒五歲氣食牛)라고 한 이래, ‘식우지기’는 청년의 기상을 찬양하는 관용구가 됐다.
거꾸로, 호랑이 껍질을 썼으되 소를 삼킬 기상이 없는 이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한나라 양웅(揚雄)은 이렇게 말했다. “양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더라도 풀을 보면 좋아서 뜯어먹을 것이고, 표범을 보면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껍질이 호랑이임을 잊을 것이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豹而戰, 忘其皮之虎也. <법언·오자>) 이들은 시쳇말로 ‘무늬만 호랑이’다. ‘양질호피’(羊質虎皮)란 소 대신 떡값을 풀처럼 뜯어먹는 이들을 말한다.
기소 독점권을 쥐고 있는 한국 검찰은 어떤 불법행위든, 호랑이가 소에게 달려들듯 꿋꿋하게 기소할 책임이 있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은 나라의 기강을 뒤흔든 희대의 불법행위다. 이걸 수사․기소하지 않는다면 ‘양질호피’라 놀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외압은 변명거리가 못된다. 악조건의 외압이 닥쳐도 사냥을 포기하지 않는 게 호랑이의 본성이다. 모든 변명은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로 남을 것이다.
청나라의 왕영빈(王永彬)은 <위로야화>(圍爐夜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주어진 틀에만 맹종할 뿐 그 정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는 무대에 오른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爲人循矩度, 而不見精神, 則登場之傀儡也.) 검찰복을 입고 있다 해서 다 검찰이 아니다. 검찰의 정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대에 오른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검찰은 장기탄우의 호랑이인가, 아니면 양질호피의 꼭두각시인가.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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