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말 농민군 지도자인 틈왕 이자성에게는 도참설에 능통한 송헌책이라는 책사가 있었다. 그는 “십팔자가 신의 기물을 주관할 것”(十八子主神器: 이씨 성의 인물이 황제가 된다는 뜻)이란 요언을 퍼뜨려 이자성의 총애를 받았다. 이자성에게는 이암이라는 또다른 책사가 있었다. 대동(大同)의 농민 유토피아를 신봉한 그는 “틈왕을 맞이해, 조세를 면하라”(迎闖王, 不納糧)는 요언을 퍼뜨리고 농민군의 자의적 살상을 금했으며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도록 해 농민군 세력을 크게 확대했다. 농민들은 이자성과 이암을 구분하지 않고 “이공자가 우릴 살린다”(李公子活我)며 환호했다. 이암과 경쟁관계이던 송헌책 등은 “이암이 황제가 되려 한다”는 요언을 퍼뜨려 이자성의 이암 살해를 부추겼다. 요언의 대가도 요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보다 천년 전인 신라 선덕왕 말년, 대신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명활성에, 정부군은 월성에 진을 쳤다.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자 비담 등은 “별이 떨어진 곳엔 반드시 유혈 사태가 벌어지니, 이는 왕이 패할 징조”라는 요언을 퍼뜨렸다. 당시 상장군이던 김유신은 “덕이 요사함을 이긴다”(德勝於妖)는 말로 왕을 위로하고, 불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낸 뒤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요언을 거꾸로 퍼뜨렸다. 그는 또 별이 떨어진 곳에서 흰 말을 제물로 제사를 지냈다. 그는 제문에서 하늘이 왕의 진영에 별을 떨어뜨린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신령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짓지 마시라”(無作神羞)고 기도했다. 김유신은 도참설을 믿지 않았음에도 요언의 위력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고, 별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철저하고 강력한 대응 끝에 요언을 이겨낼 수 있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대선 때 하루 평균 510건의 악성 요언을 생산해 트위터로 실어 날랐다. 21세기의 국정원이 도참설 수준의 요언 공작에 매달려 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암과 김유신의 대조적인 일화가 주는 교훈은 “덕이 요사함을 이긴다”는 것, 요언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 그럼에도 요언의 위력을 결코 무시하지 말고 철저하고 강력하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