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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죽음에 이르는 똥고집

등록 2013-09-30 18:32

고대 중국 최고 명의인 편작이 채나라 환후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은 지금 병이 살갗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점점 깊어질 겁니다.” 환후는 “과인은 병이 없소” 하고는 편작이 물러가자 신하들에게 “의사가 이익을 탐하여 멀쩡한 사람을 고쳐 자기 공으로 삼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열흘 뒤 편작은 환후에게 병이 살갗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고, 다시 열흘이 지난 뒤에는 병이 장과 위까지 들어갔다고 했지만 환후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시 열흘 뒤 환후를 만났을 때, 편작은 환후를 바라만 보고 말없이 나왔다. 환후가 사람을 보내 까닭을 물었다.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병이 살갗에 있을 때는 뜨거운 찜질로 고칠 수 있습니다. 병이 살갗 속으로 들어가면 돌침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병이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제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까지 들어가면 이건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의 소관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임금님의 병은 골수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씀도 못 드린 것입니다.” 닷새 뒤 환후는 몸이 아파 급히 편작을 불렀으나 편작은 이미 진나라로 달아난 뒤였고, 환후는 바로 죽었다. 죽음에 이르는 똥고집에 관한 이 유명한 이야기는 <한비자>에 실려 있다.

편작처럼 작은 조짐을 통해 핵심을 꿰뚫어보는 것을 ‘통견증결’(洞見症結)이라 하고, 환후처럼 병을 감추고 의사를 피하는 것을 ‘휘질기의’(諱疾忌醫)라고 한다. 원세훈의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 드러났을 때, 국정원의 공작정치를 금지하는 개혁을 했으면 한국 정치는 진일보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의 병을 고치는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 발언 공개 공작, 이석기 의원 내란 예비음모 공작 수사,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공작 등 국정원의 공작정치를 되레 전면에 내세웠다. 국정원 공작정치는 이제 정권의 골수까지 들어갔다. 송나라 학자 주돈이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남이 바로잡아주는 걸 싫어하여 병을 덮어두고 의사를 피하니, 정녕 죽음에 이르도록 깨닫지 못한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 꼭 이 정권에 하는 말로 들린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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