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돌도끼 대신 이성으로 시비를 가리면서 문화가 시작되었다. 이성이 등장할 때 궤변도 함께 탄생한다. 이성은 궤변과 싸우며 커왔다. 궤변이 지배하면 인류는 다시 돌도끼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다음과 같은 오류를 예로 들었다. “땅이 젖었다면 비가 내린 것이다.” “밤중에 꾸미고 다니면 간통한 사람이다.” “노란 것은 꿀벌이고 흰 것은 백조이다.” 이런 판단이 오류임은 중학생도 안다. 비가 와서 땅이 젖은 게 아닐 수 있고, 꾸미고 다닌다고 다 간통한 건 아니며, 노랗다고 다 꿀벌이거나 희다고 다 백조인 건 아니다.
공자는 정치를 맡으면 “먼저 이름을 바로잡을 것”(正名)이라고 했다. 이름이 어지러우면 세상도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논리적 판단은 ‘바른 주장’이란 뜻에서 ‘정거’(正擧)라 했고, 오류나 궤변은 ‘미친 주장’이란 뜻에서 ‘광거’(狂擧)라 했다. “오늘 월나라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今日適越而昔至也)는 혜시의 주장 같은 게 광거의 대표적 예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청문회에서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고 물은 조명철 의원이나 “문재인 당선을 바랐느냐”고 물은 김태흠 의원은, 질문을 통해 자신들이 ‘사실대로 증언하는 이는 광주 경찰이거나 문재인 지지자’라는 예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건 ‘노란 것은 다 꿀벌’이라는 수준의 판단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말이 이석기 의원의 종북 성향을 보여준다는 국정원과 일부 언론의 주장은 광거의 결정판이다. 이런 미친 주장을 따른다면 사마천은 이천년 전에 주체사상을 예비한 게 되고, 이 말을 외워온 역대 유학자들은 종북 성향을 의심받아야 한다. 이건 ‘오늘 월나라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는 수준의 잠꼬대다. 이들은 광거와 궤변을 통해 사실은 광주 경찰, 문재인 지지자, 주체사상을 찬양한 셈이 되었다. 논리적 판단 능력이 없는 이들이 의정활동을 하고 국가 기밀을 다룬다는 건 대한민국의 수치다. 광거와 궤변이 판을 치는 걸 방관하면 우리는 다시 정치적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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