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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누가 거위의 털을 탐하는가

등록 2013-08-12 19:33수정 2013-08-12 20:44

맹자는 전국시대 재력가인 백규와 대화를 나누었다. 학자와 실물경제인의 대화인 셈이다. 백규는 자기 영지에서 조세율을 이십분의 일로 낮추겠다고 했다. 당시 조세율은 대개 십분의 일(십일세)이었다. 맹자는 백규에게 “그건 오랑캐의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오랑캐는 종묘 제사와 폐백 등의 예법이 없어 그 정도 세수로도 되지만, 중원의 문화와 인륜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세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맹자는 “요순의 도(십일세)보다 가볍게 하려는 자는 큰 오랑캐이거나 작은 오랑캐이며, 요순의 도보다 무겁게 하고자 하는 자는 큰 폭군이거나 작은 폭군이다.”(欲輕之於堯舜之道者, 大貉小貉也; 欲重之於堯舜之道者, 大桀小桀也.)라고 주장했다.

맹자는 유가의 경전인 <서경>을 글자 그대로 믿으면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같은 원리로, <맹자>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화주의자인 맹자의 오랑캐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고 논리만 받아들이면, 지나친 과세는 폭군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공동체의 인륜과 문화 유지를 위한 적절한 과세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중증질환 무상 치료, 무상급식, 학비 부담 경감 등 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공동체가 적절한 조세 부담을 수용해야 한다. 맹자는 원론을 얘기한 데 그쳤다.

<맹자>는 백규의 감세 논리는 소개하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화식열전>을 보면, 다른 이들이 토지 생산력을 높이려 할 때, 백규는 시세 변동의 관찰을 즐겼다(樂觀時變). 그는 남들이 외면한 걸 사들여 그게 귀해졌을 때 파는 수법으로 재산을 모았다. 백규는 정책 대안이 있었기 때문에 ‘거위의 털’을 탐하지 않고도 자기 영지를 잘 경영할 수 있었다.

맹자와 백규를 공평하게 읽는 태도로 이번 세법 개정안을 보면, 고소득 직장인의 부담을 늘리고 저소득층에 혜택을 돌렸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대기업과 재산 소득자는 피해가고, 손쉬운 근로소득자만 건드렸다는 점에서 수순이 결정적으로 틀렸다. 수순 하나 틀리면 한 판의 바둑을 지기도 한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잘 설명해주었듯, 이 정책은 근로자를 ‘털 뽑아가기 좋은 거위’ 취급하는 것이다. 원점에서 검토할 거라면 대기업과 재산 소득자에 대한 증세 정책을 앞세우도록 수순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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