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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부자 길들이기와 경제민주화

등록 2013-07-29 18:13

중국의 강남은 양쯔강 이남이다. 기후가 좋고 땅이 비옥해 예로부터 부자가 많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황제의 권력을 쥐고도 강남 부자를 부러워하는 시를 지었다. “신하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짐이 먼저 일어나고/ 신하들 이미 잠들었을 때 짐은 잠 못 드네/ 황제 자리가 강남의 부자 영감만 못하니/ 해가 중천에 솟도록 이불 뒤집어쓰고 있네.”(百僚未起朕先起, 百僚已睡朕未睡, 不如江南富足翁, 日高丈五猶披被.)

당시 강남에는 원나라 때부터 갑부인 심만이, 심만삼 형제가 있었다. 심만이는 주원장이 지은 시를 전해 듣자마자 집사에게 재산 관리를 맡긴 뒤 큰 배에 가족들을 싣고 달아났다. 두 해 뒤 강남 부자들이 줄줄이 멸족당할 때 심만이는 재앙을 면했다. 심만삼은 성 보수비용을 대고 군사들을 위로하는 식량을 풀었다. 주원장은 “필부가 감히 천자의 군사를 위로하는 저의가 뭐냐”며 그를 처형하라고 했다. 심만삼은 황후에게 로비해 간신히 살아났다. 황제와 정경유착을 시도하다 목이 달아날 뻔한 것이다.

주원장은 부자들을 벽지로 강제 이주시킨 뒤 “멋대로 귀향하는 자는 엄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정권 장악 뒤 부자들 내쫓고 재산 빼앗는 건 진시황과 한고조 등 새 왕조 창건자들의 해묵은 수법이다. 왕실의 재정 충당과 호족의 기반 박탈, 민심 획득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주원장은 부자와 손잡는 대신 그들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는 재위 31년 동안 강남의 중심지인 소주의 지방관을 30번 바꿨다. 그중 14명이 처벌을 받았다. 그는 또 강남 출신 인사는 세무와 재정을 맡는 호부의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 지방 관리와 부자의 유착을 삼엄하게 차단한 것이다.

집권 뒤 지난 정권과 가까웠던 재벌 치는 건 지겹게 많이 본 풍경이다. 부자 길들이기는 왕들도 써먹던 정권강화 수법이다. 그런 걸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국민은 표적 수사를 통한 재벌 길들이기에 냉담하다. 대신 불법 탈법 탈세 비자금 순환출자 내부거래 불공정행위 정경유착으로 국부를 독식하는 재벌의 악습을 고칠 공정하고 엄격한 법질서를 요구한다.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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