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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칼은 어떻게 보따리가 되었나

등록 2013-06-10 19:42수정 2013-06-10 19:44

중국 외교정책의 기조가 ‘자신의 강점을 숨기고 그늘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란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숨긴다’는 뜻으로 쓰인 ‘도’(韜)자에 중국인들의 모든 의뭉스러움이 다 담겨 있다.

이 글자를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 삼은 사람은, ‘강태공’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주나라의 개국공신 여망(呂望)이다. 그는 <육도>(六韜)라는 병서를 지었다. 위작설이 분분하지만, 1972년 산둥성 인췌산 한나라 무덤에서 일부가 출토됨에 따라, 이 책이 전국시대에 이미 읽혔음이 확인됐다.

‘도’(韜)를 흔히 ‘칼집’으로 번역하는데, 잘못이다. 칼집은 ‘검초’(劍鞘)라고 한다. ‘도’는 칼집을 싸는 ‘칼전대’를 말한다. 칼을 칼집에 넣어봤자 사람들이 무기인 줄 다 알지만, 칼전대에 넣으면 드디어 무기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보따리로 변한다. ‘도’라는 글자의 의뭉스러움은 이런 수준이다. <육도>는 이렇게 말한다. “매가 다른 새를 치려 할 때는 낮게 날면서 날개를 움츠리고, 맹수가 먹이를 덮칠 때는 귀를 접고 납작 엎드려 긴다. 성인이 행동에 나설 때는 반드시 어리석게 보이도록 한다.”(鷙鳥將擊,卑飛斂翼; 猛獸將搏, 弭耳俯伏; 聖人將動, 必有愚色。<六韜·武韜·發啓>) ‘우색’(愚色)이란 바로 칼전대로 싸 보따리로 변한 무기다.

‘도광양회’는 중국 전략사상의 핵심이다. 여포에게 패한 유비에게 제갈공명이 들려준 조언도 ‘도광양회’였고,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이 제시한 외교노선의 뼈대도 ‘도광양회’였다.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라 불리기 시작했을 때 중국 지식인들은 열광했지만, 한편 “낙타는 굶어죽어도 말보다 크다”(駱駝餓死比馬大)는 속담의 인용도 잊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일인당 지디피로 보면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중국이 어느새 핵보유국 자격을 심의하는 세계 패권의 중심 자리에 앉아 있다. ‘도광양회’의 위력은 이렇게 무섭다. 노출증 환자 수준으로 과시욕에 불타는 이 나라가 중국의 심의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기 싫다면, 그들로부터 적어도 ‘도광양회’와 ‘우색’은 배워야 할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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