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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아전의 나라’와 암행감찰

등록 2013-06-03 19:19

암행어사의 기원은 한의 ‘직지사자’, 명의 ‘금의위’ 등에서 찾는다.

조선은 태조 때 월강무역 금지를 위한 어사 파견 기록이 있다. 영조 때 이름 날린 어사 박문수 같은 영웅도 있지만, 제구실을 못한 이도 적지 않았다. 헌종 때 어사 임백경은 주막에 들자마자 꼬마들에게 둘러싸여 “어사 오셨다”는 환영을 받았다. 민간과 달리 방울이 없는 역참의 말을 탔기 때문이었다. 영조 때 어사 이경양은 민가에 묵었다가 상욕을 랩처럼 뿜는 주인 여자에게 봉변당했다. 지켜보던 남편이 절하며 “시골 여편네가 어사님께 죽을죄를 졌다”고 했다. 남루하게 꾸몄어도 양반 티를 못 지운 때문이다.

순조 때 호남 어사 조만영은 관아를 들이치면 우선 농지 세금 담당 아전들을 끌어내 무조건 삼릉장(세모 방망이)으로 흠씬 두들겨 팼다. 그이들이 얼마를 해 처먹었는지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누가 악질인지 다 알고 있는 백성들은 “귀신같이 잡아 족친다”며 열광했다. 이 일화는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나온다. 조만영의 족집게 비결은 이렇다. “농지 담당 아전은 썩지 않은 자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눈 감고 매타작을 해도 억울할 놈이 없다.” 흉년이 들면 중앙정부는 세금을 감면해주지만, 이 틈을 탄 아전의 농간은 더 극심해져 조선은 ‘아전의 나라’(吏之國)로 변한다. 다산은 아전들이 “양반들도 다 해 처먹는데 우릴 어떻게 처벌할 거냐”며 대놓고 패악질한다고 통탄한다. 암행어사 경험이 있는 다산은 어사의 보고를 받은 뒤 다른 어사를 같은 곳에 보내 크로스체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구조적 부패 척결을 위해선 다산을 뛰어넘는 현장행정의 강력한 의지가 절실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1일 강남구청의 한 과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박 시장의 암행감찰반이 지난 4월18일 강남구청 공무원의 돈봉투 수뢰 현장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 의뢰한 일이 ‘직권남용’이자 ‘불법사찰’이라는 게 고소인의 주장이다. 그는 박 시장을 인권위에도 제소할 거라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다산이 소개한 조선 아전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조선은 ‘아전의 나라’라는 다산의 개탄이 먼 옛날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인가.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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