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식당의 방을 빌려 친한 친구들과 저녁 먹으며 담소하기를 즐긴다. 한번은 약속 장소에 갔더니 중국 공산당 중견간부인 친구가 운전기사와 함께 룸의 원탁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나의 기사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카인에 빙의되어, 그 말이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는 소리로 들렸다. 아마도 홀에서 혼자 식사할 거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기사도 방으로 불러 같이 먹자고 했다. 순간 나는 귓불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끼며, 사양하는 기사를 방으로 모시고 왔다.
나는 중국에서 국장급 정도의 고위직까지 친구로 사귀어 봤지만, 운전기사와 함께 룸에서 식사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공식 만찬이거나 기밀이 필요한 모임이 아니면, 운전기사가 룸에 들어와 자기 상사와 농담하며 저녁을 즐기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뒤 나도 특별한 일 아니면 늘 기사와 함께 방에서 식사를 했다. 물론 중국 공산당 고위직 가운데도 권위주의에 찌든 인사가 없지는 않지만, 중국인에게는 큰 솥 밥을 함께 먹는다는 ‘다궈판’(大鍋飯)의 대동사상이 있다.
한국에도 이런 대동사상이 있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일자무식으로 평생 관군을 피해 도망 다녔지만, 그는 길 위의 삶을 통해 놀라운 일화들을 수없이 남겼다. 숨어 있던 집에서 밤늦게까지 길쌈하는 소리가 나자 그는 주인에게 누가 길쌈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주인이 며느리라고 답하자, 해월은 “길쌈하는 이는 한울님”이라고 했다. “일하는 이가 바로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통찰은 다궈판보다 더 농익은 대동사상이다.
라면 상무, 장지갑 귀뺨 빵 회장, 우유회사 갑 아저씨에서 출장 성추행 청와대 대변인까지, 최근 봇물 터진 추태의 배경에는 봉건적 ‘상전의식’이 찌들어 있다. 이들의 상전의식은 천박한 경제지상주의 졸속근대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인본주의에서 비롯했지, 겨우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시작한 게 아니다. 이 착각을 바로잡지 않는 한, 라면 상무와 윤창중의 계보는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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