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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꽃샘추위에 멍든 꽃을 보며

등록 2013-04-15 20:10수정 2013-05-14 14:30

입춘에 폭설 오더니 올해 꽃샘추위는 유별났다. 집 앞 목련이 필 때부터 꽃잎에 멍이 들었다. 꽃 시샘도 너무 모질면 상처를 남긴다. 춘한을 경계하는 말에 귀 기울일 일이다.

중국 속담에 “봄추위는 뼈가 시리고, 가을 추위는 살갗이 시리다”(春凍骨頭秋凍肉)는 말이 있다. 가을보다 봄추위가 더 맵다는 말이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한국 속담도 있다. 고참 노인들은 조심하지만, 설늙은이는 자기 나이도 모르고 방심하다 꽃샘추위에 당한다는 말이다. 당나라 고승 임제는 되레 “꽃샘추위가 매워서 젊은 사람을 얼어 죽게 만든다”(春寒料峭, 凍殺年少. <오등회원> 19권)고 했다. 성급히 봄옷을 꺼내는 건 청춘이기 때문이다. 한자어로 꽃샘추위를 ‘춘한’ 또는 ‘춘한료초’(春寒料峭)라 하는데, 후자는 임제의 법어에서 왔다.

꽃샘추위는 무언가 성취하기 전에 겪어야 하는 마지막 시련의 은유다. 겨울은 갔어도 봄을 도모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구한말 문인 김석은 ‘꽃샘추위’(春寒)라는 시에서, “꽃 더디게 보는 게 아쉽지는 않으나/ 오로지 근심하는 건 보리 파종 늦어지는 것”(不恐看花晩/ 祗愁種麥闌)이라 했다. 조선 중기 문장가 서거정은 “꽃샘추위 매워 맑았다 흐렸다 하니/ 봄의 흥취와 봄의 시름 둘 다 금할 길 없어라”(春寒料峭乍晴陰/ 春興春愁兩不禁)라고 했다. 오늘의 청춘이야말로 춘흥과 춘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듯하다.

꽃샘추위에도 꽃은 피고, 불우한 청춘도 어른이 되지만, 시련이 너무 극성스러우면 꽃과 청춘의 영혼에 상처가 남는다. 변덕스런 입시제도,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는 교육부, 드높은 청년실업 등 이 땅의 청춘들이 진 삶의 무게는 꽃샘추위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여권에서조차 새 정부의 2030세대 공약이 실종된 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날, 청년정책은 한국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임을 다시 되새기고 싶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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