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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나랏일은 연습이 아니다

등록 2013-03-25 19:23수정 2013-05-14 14:31

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 자피가 윤하를 지방 장관으로 임명하려 했다. 현인 자산은 윤하가 왕초보여서 반대했다. 자피가 답했다. “내가 아끼기 때문에 그는 배신하지 않습니다. 직책을 맡기면 정치도 배울 겁니다.” 자산은 반박했다. “만약 그대에게 고운 비단이 있다면, 왕초보에게 주어 재단을 배워가며 옷을 만들라고 하겠습니까? 나랏일은 백성의 삶을 지켜주는 보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배워가면서 정사를 돌보라 하십니까. 나랏일이 비단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정치를 배운 뒤 정사를 맡는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정사를 맡은 뒤 정치를 배운다는 얘긴 못 들어봤습니다. (…) 사냥 나갈 때, 마차와 활을 왕초보에게 맡긴다면 무슨 수확이 있겠습니까? 마차가 뒤집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자피는 자산의 충언을 받아들였다.(<춘추좌전> 양공 31년)

‘고운 비단으로 연습하며 재단을 배운다’는 미금학제(美錦學製)와, ‘초보가 칼을 잡으면 비단을 망친다’는 조도상금(操刀傷錦)이란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이후 ‘고운 비단을 맡긴다’(付美錦)는 말은 공무를 맡긴다는 뜻으로, ‘비단을 상하게 한다’(傷錦)는 말은 공직 수행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유로 쓰였다. 가령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관리 선발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칼과 붓에 서툰 이들’이 대충 벼슬을 꿰찬다며 개탄했다.

능력보다 충성심으로 발탁되거나 공직에 부합하는 공정성을 배우지 못한 인사는 ‘조도상금’할 위인들이다. 헌재소장, 총리, 국방장관, 미래창조과학장관, 중기청장, 법무차관, 공정위원장 등 ‘공포의 외인구단’ 멤버 수에 필적하는 고위직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은 이들이 공직을 맡아 ‘조도상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집권 한달의 박근혜 대통령이 ‘나홀로 수첩 인사’로 장관 하나 제대로 못 앉히는 사태가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대통령이 ‘미금학제’하고 있다는 근심을 품게 될 것이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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