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상수의 고전중독] 그래도 역사는 기록된다

등록 2013-03-11 19:23수정 2013-05-14 14:31

현종 8년(1667년) 1월30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왕과 신하가 사상 가장 격렬하게 맞붙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가 생생하게 기록에 남아 있다.

현종(이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 7명을 한꺼번에 잘랐다. 박장원(어사 박문수의 조부)과 이단석이 부당하다고 하자 현종은 이들도 차례로 쫓아낸 뒤 “오늘 일은 사관들도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사관 조사석은 “비록 왕명이지만, 받들 수 없습니다” 하며 붓을 놓지 않았다. 현종은 즉시 조사석도 잘랐다. 신하들이 이러다간 조정이 텅 비겠다고 비판하자 현종은 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이때 사관 홍만종이 대미를 장식한다. “저도 사관으로서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사석이 기록하다 파직당했으니, 저도 같은 죄를 내려주소서.” 현종은 다시 고함질렀다. “감히 왕 앞에서 버젓이 죄를 청해? 무겁게 다스려라!”

왕이 오프 더 레코드를 명했으나 사관들은 그가 기록을 금하는 치졸한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까지 기록에 남겼다. 반면 정조는 옛말을 인용해 “사관이 임금의 과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죄는 사형(史不記過, 其罪殺之. <홍재전서> 174권)”이라며, 사관들에게 자신의 잘잘못을 빠짐없이 기록에 남기라고 독려했다.

이명박 정부는 총 1088만건의 기록물을 차기 정부에 넘겼다. 그중 비밀기록물은 0건, 지정기록물은 24만건이다. 노무현 정부는 비밀기록물 9700건, 지정기록물 34만건을 포함해 총 825만건의 기록물을 차기 정부에 넘겼다. 이명박 정부가 전임 정부보다 지정기록물이 현저하게 적고 비밀기록물은 단 한 건도 없다는 건 해괴한 일이다. 잘잘못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한 모든 일은 국가의 소중한 경험 자산이다. 혹시라도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혹처럼 폐기한 문서가 있다면 그건 심각한 범법행위다.

자기 오점을 가리려는 현종 같은 어리석은 통치자들은 계속 나오겠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고 역사는 기록된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한겨레 인기기사>

“윤창중에게 격려전화 하시랬더니 대변인 시킬줄은…”
“호텔 방문 잠그고, 두 여성 울며 소리 질렀다”
반성한다던 남양유업, 뒤에선 대리점주 압박
제주서 ‘살인진드기’ 의심 환자 첫 발생
[화보] 박근혜 대통령 “윤창중 성추문 죄송”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1.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독재자를 도와주는 6가지 유형 [유레카] 2.

독재자를 도와주는 6가지 유형 [유레카]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3.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아침햇발] 4.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아침햇발]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5.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