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8년(1667년) 1월30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왕과 신하가 사상 가장 격렬하게 맞붙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가 생생하게 기록에 남아 있다.
현종(이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 7명을 한꺼번에 잘랐다. 박장원(어사 박문수의 조부)과 이단석이 부당하다고 하자 현종은 이들도 차례로 쫓아낸 뒤 “오늘 일은 사관들도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사관 조사석은 “비록 왕명이지만, 받들 수 없습니다” 하며 붓을 놓지 않았다. 현종은 즉시 조사석도 잘랐다. 신하들이 이러다간 조정이 텅 비겠다고 비판하자 현종은 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이때 사관 홍만종이 대미를 장식한다. “저도 사관으로서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사석이 기록하다 파직당했으니, 저도 같은 죄를 내려주소서.” 현종은 다시 고함질렀다. “감히 왕 앞에서 버젓이 죄를 청해? 무겁게 다스려라!”
왕이 오프 더 레코드를 명했으나 사관들은 그가 기록을 금하는 치졸한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까지 기록에 남겼다. 반면 정조는 옛말을 인용해 “사관이 임금의 과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죄는 사형(史不記過, 其罪殺之. <홍재전서> 174권)”이라며, 사관들에게 자신의 잘잘못을 빠짐없이 기록에 남기라고 독려했다.
이명박 정부는 총 1088만건의 기록물을 차기 정부에 넘겼다. 그중 비밀기록물은 0건, 지정기록물은 24만건이다. 노무현 정부는 비밀기록물 9700건, 지정기록물 34만건을 포함해 총 825만건의 기록물을 차기 정부에 넘겼다. 이명박 정부가 전임 정부보다 지정기록물이 현저하게 적고 비밀기록물은 단 한 건도 없다는 건 해괴한 일이다. 잘잘못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한 모든 일은 국가의 소중한 경험 자산이다. 혹시라도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혹처럼 폐기한 문서가 있다면 그건 심각한 범법행위다.
자기 오점을 가리려는 현종 같은 어리석은 통치자들은 계속 나오겠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고 역사는 기록된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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