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에 실려 있는 ‘큰 쥐’라는 작품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저항시 가운데 하나다.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 먹지 마라/ 오랜 세월 너를 받들었는데/ 조금도 나를 돌아보지 않으니/ 맹세코 너를 떠나/ 저 유토피아로 가리라.”(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낙토’란 두 글자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쥐 얘기는 <주역>에도 나온다. 승진에 관한 상황인 ‘진괘’(晉卦)에는 “큰 쥐처럼 높이 기어오른다”(晉如
鼠)는 말이 나온다. 주변의 멸시는 아랑곳 않고 오로지 자리만 탐하는 자를, 기어오르기의 대가인 큰 쥐에 빗댄 것이다.
이후 쥐는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됐다. <한비자>에는 제환공이 관중에게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이냐고 묻자 “들쥐새끼들”이라고 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나라 시인 조업(曹
)도 <나라 곳간의 쥐>(官倉鼠)라는 시에서 탐관오리를 쥐새끼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쥐를 보고 같은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 ‘이사열전’을 보면, 훗날 진시황의 재상 자리까지 오르는 이사는 젊은 시절 쥐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뒷간의 쥐는 겨우 오물이나 먹으면서 사람이 오면 벌벌 떠는데, 곳간의 쥐는 곡식더미 위에서 대놓고 낟알을 까먹으며 사람이 와도 놀라지 않는다. 이사는 이걸 보고 소리쳤다. “사람이 똑똑하고 미련한 게 쥐와 같으니,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도다!”
사람들의 눈이 다른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가령 이사는 아무 증빙 영수증 없이 혈세 까먹는 고위공직자에게선 곳간 쥐의 위풍당당함을, 죽어도 물러남을 모르고 기어오르는 권력 불나방에게선 생쥐 승리의 감격 드라마를 읽을 것이다. 그 쥐를 때려잡으려는 백성들에게는 인재를 아끼라는 호통이 날아올 것이다.
더 해줄 말이 없다. 우리는 그들을 쥐 또는 이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밖에 없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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