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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연주 칼럼] 세습과 공정사회

등록 2010-10-31 19:30수정 2018-05-11 15:50

정연주 언론인
정연주 언론인
북쪽의 권력 세습이 논쟁거리다. 그런데 남쪽에도 ‘세습’은 차고 넘친다. 족벌 언론, 재벌, 사학재단, 대형 교회…. 그런데 가장 구조적이고 광범위한 ‘세습’은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학업 성취·입학·취업에서 자녀 세대로 ‘세습’되어 불평등이 구조화·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 1970~2003년 사이 입학한 서울대 사회대생 1만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문직·관리직으로 구성된 고소득 직군 자녀들의 입학률이 저소득 직군의 자녀보다 무려 16배(2003년)나 높았다.

#2. 2004~2010년 서울대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 변천을 보면, 전문직·경영관리직의 아버지를 둔 신입생이 2004년에 전체 신입생의 60%를 차지했는데 2010년에는 64.8%로 늘어났다. 반면, 농축수산업·비숙련노동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신입생 비율은 2004년 3.3%에서 2010년 1.6%로 더욱 줄어들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3. 한 달에 사교육비로 평균 50만원을 지출하는 고등학생이 내신성적 3등급 이상에 속할 확률은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을 경우보다 2배 이상 높다.(김민성 성균관대 교수 ‘고등학교 내신성적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의 효과’)

#4.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들의 꿈인 장래희망도 큰 차이가 있었다. 부모 소득이 높고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일수록 고소득 전문직을 희망하는 반면, 부모의 소득이 낮고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학생일수록 저소득층 직업군을 희망했다. 가난이 꿈마저 가난하게 만들었다.(올해 10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조사)

취업을 비롯해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학벌·지역 등에 따른 혹독한 차별을 생각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자녀 세대로 ‘세습’되고, 이로 인해 신분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세습적 불평등 구조를 깨는 것은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다.

이를 위해 시급하게 제도화해야 할 하나의 방법은 구조적 불평등에 갇혀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처를 취하고, ‘주홍글씨’처럼 각인되어 있는 학벌·지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 ‘블라인드 심사’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혹자는 할당제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효율성과 능력의 극대화가 절대적 가치라고 믿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은 ‘강자’가 기회를 갖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자연스런 것이라 주장한다. 가령 대학 입학을 결정할 때 사회경제적 조건 따위 헤아릴 필요 없이 ‘절대 점수’가 높은 학생이 입학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의 동물 세계와 같은 것으로 보면 이 말은 맞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동물의 왕국’과 다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삶’을 지향한다. 사회경제적 조건을 비롯해 여러 조건에서 뒤처져 있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배려의 점수’를 주어 첫출발점이 균등하도록 하는 것은 공정사회, 기회균등의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다.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진보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960년대 초에 ‘어퍼머티브 액션’(사회적 약자 보호정책)이 도입되었다. 근본 정신은 ‘기회의 균등’이었다.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약자 집단에 일정한 기회를 강제로 할당하는 정책이다. 흑인으로서 합참의장을 거쳐 국무부 장관까지 지낸 콜린 파월이 “이 자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퍼머티브 액션 덕분”이라고 고백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공정사회’로 가려면 ‘기회의 균등’을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구조적 불평등의 자리에 있는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할당제, 학벌·지역 등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근원적으로 없애는 ‘블라인드 심사’를 제도화할 때가 되었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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