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문득 돌아보니 긴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기자가 된 게 1970년 말이었으니, 언론인으로 살아온 날이 42년이나 된다. 그 세월 속에 우리 현대사의 우여곡절과 질곡, 고난과 환희,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동아일보>에 입사하고 2년 지난 뒤 유신이 선포되었으니, 나의 기자 생활은 유신을 전후하여 박정희 독재가 영구집권 체제로 굳어지던 시절과 맞물려 있다. 절망, 분노, 좌절, 체념이 20대 후반의 내 젊음을 지배했다. 어디 나뿐이었을까. 당시 젊은 기자들은 언론의 기본 기능인 ‘사실보도’조차 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우리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가 압살한 자유언론을 한 뼘, 한 뼘 되찾아 오기 시작했다. 유신의 그 암흑 시절, 그 모질고 엄혹했던 시절에 힘을 모아 저항하여 얻어낸 찬란한 성취였다.
그러나 자유언론의 공간에서 국민적 지지가 번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르자, 정권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권력은 결국 칼을 빼들었다. 114명에 이르는 기자·피디·아나운서들이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서 해직되었고, 33명의 기자가 <조선일보>에서 해직되었다. 1975년 봄의 일이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었다.
허허벌판으로 쫓겨난 우리들의 삶은 황량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걸핏하면 가택연금에, 수배에, 때로 무더기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힘들게 살다 병을 얻어, 그 젊은 나이에 꿈도 키워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동지들도 생겨났다. 하늘은 그리도 무심했다. 열여덟 동지들이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는 그 모진 세월을 함께 지내 온 동아투위(동아일보사 해직 언론인 모임) 선배·동료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아일보에서 함께 기자 생활을 했고, 자유언론을 위한 싸움과 그 뒤의 엄혹한 시절을 함께 지났으니, 서로가 무얼 모를까 싶었다. 얼굴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언론매체인 <미디어 오늘> 인터넷판에 연재되고 있는 특별연재 ‘동아투위, 유신을 말하다’에 실리는 선배·동료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떤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를 거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 그 엄혹한 시절을 어찌 살아왔던가’(이기중), ‘자유언론 운동, 해직, 그 후의 삶’(박종만), ‘‘상식을 단죄하던 시대’의 청산을 위하여’(장윤환), ‘감옥에서 맞은 딸의 결혼식’(윤활식) 등을 읽으면서 함께 감옥을 살았던 동지들의 삶과 생각조차도 나는 이렇게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쳤다.
특히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의 남아 있는 가족들이 쓴 글을 보면서 나는 먼저 떠난 분들에 대해 미안함, 그 선배들이 다 이루지 못한 꿈과 한을 생각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해직 두 해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이의직 선배의 아들 이주헌), ‘곁에 계시지 않지만 자랑스러운 당신’(홍종민 선배의 부인), ‘그렇게 서둘러 떠날 당신이 아니었는데’(심재택 선배의 부인 송정숙)….
가장 가까이서, 그 엄혹한 시절을 함께 지내온 동지들의 삶조차도 내가 이리 무지한데, 조금만 더 사람 관계를 건너뛰면 우리가 안다고 하는 당신들의 삶, 고통, 한을 제대로 알 리 만무하다.
개인의 삶조차 이러할진대, 그 개인이 모인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무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터이다. 역사, 그것을 구체적으로 담는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유신의 딸이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그 유신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짓밟았는지, 특히 민주주의의 바탕인 언론자유를 어떻게 침탈하고 야만적 지배를 했는지, 그것이 지금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 나의 동지들이 쓰고 있는 ‘동아투위, 유신을 말하다’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 글을 통해 유신의 실체를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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