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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실용외교’ 하려면 미-중 사이서 실리 챙겨라

등록 2010-08-23 20:12

김영훈 기자 <A href="mailto:kimyh@hani.co.kr">kimyh@hani.co.kr</A>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한미동맹 ‘올인’ 중국 구애 ‘외면’
북한 둘러싼 미-중 경쟁구도를
국익으로 연결시킬 의지 필요해
[싱크탱크 맞대면] 천안함 사태이후 한국외교

“북한의 동맹국 중국의 위상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과의 더욱 긴밀한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천안함 사건 이후 최근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마늘분쟁과 고구려사 기술 문제와 같은 양국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심각한 갈등은 전례가 없었다. 또한 그러한 갈등이 단순히 수사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등 현실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사실, 천안함 사건 자체가 최근 한-중 관계 경색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초기부터 중국에서 이미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우려가 표출됐다는 사실은 한-중 관계의 경색이 좀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한-중 관계 경색은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부터 ‘실용외교’를 강조해 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선뜻 이해되기 힘들다. 실용외교는 “무정부적 국제정치에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으며 오직 세력관계에 근거한 국가이익만 있다”는 현실주의적 사고에 기반한다. 당연히, 중국의 부상이 날로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 역시 발전시켜야 할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실용외교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정작 대중국 관계에서는 관념외교를 탈피하지 못했다. 현실 속에서 미-중 간의 역학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선험적으로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고 중국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원한 민주국가이고, 사회주의 중국은 침략국이었다는 흑백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현재 미-중 간 국력 격차가 존재하고 또한 중국이 잠재적 수정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한-미 동맹 강화 전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미 동맹 강화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합리성에 기초해야지, 이념적 정체성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외교정책 결정자들의 정체성을 충족시켜 줄지는 모르나 실제적으로는 국익을 심각히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청에 대한 강경책은 조선 사대부들에게 임란기 명이 구원했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았다는 만족감을 선사했을지 모르나, 그 후과는 청군에 의한 조선 강토의 초토화였다.

21세기 국제정치 역시 17세기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제정치는 여전히 무정부 상태이며, 따라서 국제정치의 핵심 변인은 국가간 역학관계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쇠퇴하고 있으며, 반대로 중국의 종합국력은 급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이에 한반도가 위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에 근거한 한-미 동맹 강화의 대가로 한-중 관계의 악화를 감내해야 할 현실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친미외교가 대중국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한-미 관계에서조차 과연 한국의 국익과 부합하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해준 대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부터 이란 제재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으로서는 사실 한-미 동맹 강화가 탈냉전기 세계전략과 부합하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다. 반면, 한국한테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는 과도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란 제재에 동참할 때 초래되는 한-이란 관계의 정치경제적 파국은 과연 누가 보상할 것인가?


결국, 엠비(MB) 외교가 진정으로 실용외교를 추구한다면, 미-중 간 세력관계에 대한 정확한 독해에 따라 대중국 전략을 재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이 소위 ‘약자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강대국들 사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약소국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을 때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한국의 대중국 편승을 염려해 한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려는 합리적 동인을 갖는다. 반면 중국은 한국을 ‘유인’해 미국의 세력권을 잠식하려는 또다른 합리적 동인을 갖는다.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한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한 동반자관계를 수립한 의도에는 이러한 속내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는 이러한 역학구도를 스스로 외면하고 있다. 한-미 동맹 강화에 ‘올인’함으로써 중국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부해 버린 것이다. 오히려 최근 서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드러났듯이 의도적으로 중국을 자극한다는 인상까지 풍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국익에 과연 어떠한 보탬이 있는가? 이명박 정부가 진정 실용외교를 추구한다면, 미-중 경쟁구도를 한국의 국가이익으로 연결시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강대국들에 대한 ‘투항’이나 마찬가지이다.

안정적인 남북관계 역시 실용외교의 필수조건이다. 현재와 같이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북한은 통미봉남 전략을 더욱 강화한다든지, 그것이 어렵다면 대중국 관계를 좀더 공고히 할 합리적 동인을 갖는다. 미국으로서도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중국의 세력권을 잠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적극적 대미관계 개선 행태를 반길 수 있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경쟁구도 속에서 지정학적 요충지 북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렇다면 한국의 대북 강경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약자의 힘’을 강화시키는 모순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이, 현재 미·중 양국이 상호 경쟁 속에서도 ‘한반도 안정’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대북 강경책이 미·중 모두에게 소외당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북 강경론자들은 북한을 더욱 압박하면 권력승계기 북한의 ‘급변사태’까지도 도모할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들에게 1990년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은 롤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표면화된 동독의 거대 동맹국 소련의 쇠퇴라는 구조적 세력관계 변화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2010년 동아시아는 어떠한가? 북한의 동맹국 중국의 위상은 오히려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 체제의 안정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독일 통일 시기 헬무트 콜 서독 정부는 소련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통일독일에 대한 소련의 우려를 완화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하물며 그 대화 상대가 쇠락하는 소련이 아니라 부상하는 중국이라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과의 더욱 긴밀한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거꾸로 선 실용외교를 바로 세울 때다.

박홍서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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