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보수의 시대, 보수의 석권 / 박찬수

등록 2008-04-07 20:50수정 2008-04-07 21:42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제 진정한 보수의 시대가 열렸다.”

2004년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자,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 리처드 비구어리는 이렇게 외쳤다. 공화당이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선거를 동시에 이긴 것은 76년 만의 일이었다. 비구어리는 “200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 보수주의 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20~30년 민주당의 집권은 어려울 것”이란 예측도 했다.

내일 총선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린다. 한나라당이 못해도 170석은 얻을 것이라느니,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 후보들을 합치면 이른바 ‘보수 블록’이 200석을 훨씬 웃돌 것이라느니 하는 전망이 나온다. 낮은 투표율 속에 20~30대의 기권율이 훨씬 높을 것이란 관측은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에도 ‘보수의 시대’가 임박한 듯하다.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권력을 한손에 쥐는 게 정권의 성공을 보장하진 못한다. 4년 전 비구어리가 기대한 ‘보수의 시대’는 미국에서 피기도 전에 시들고 있다. 20년은 족히 갈 것이라던 공화당 정권은 올 11월 대선에서 상·하 양원과 백악관까지 민주당에 내줄 처지에 몰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오만한 독주 탓이다. 부시 정권 아래서 미국은 힘만 있지 존경은 받지 못하는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부유층을 위한 감세 정책에도 경제는 침체했고, 절대빈곤 인구의 비율은 해마다 늘었다. 너무 강하면 교만해지고, 교만은 빠른 몰락을 가져오기 쉽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한 열린우리당의 종말이 어떠했는가.

국민이 행복해지려면 이명박 정권이 성공해야 한다는 바람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그 성공이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는 있다. 청와대는 며칠 전, 여직원들의 평일 청바지 착용을 금지했다. 부시 대통령이 2000년 백악관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의 하나가 직원들의 청바지 착용 금지였다. 복장이 자유롭고 피자판이 뒹굴던 빌 클린턴 시절의 백악관은 부시 치하에서 단정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나중에 이걸 두고 한 신문은 “클린턴 시절엔 백악관은 시끄러웠어도 세계는 조용했다. 부시 시절엔 백악관은 조용하지만 세계는 시끄러워졌다”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내세웠던 구호는 ‘따뜻한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였다. 부시의 보수주의가 따뜻하지 않다는 걸 미국민들이 아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구호는 ‘실용주의’다. 그러나 지금 새 정부에선 너무 많은 형식과 특혜, 편의주의가 ‘실용’이란 구호 아래 이뤄지고 있다. 정부기관들은 수억원을 들여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 액자를 새로 만드느라 바쁘다. 청와대 집무실의 사각 탁자는 ‘권위주의적’이란 이유로 타원형으로 교체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만든 청와대 상징도 바꿨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에프 케네디의 흉상을 치웠지만, 백악관 상징까지 바꾸진 않았다.

이런 변화가 자신의 삶을 편하게 해주지 못하리란 걸 국민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출범 초기인데도 계속 떨어지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걸 말해준다. “개별적인 정책 사안이나 행태는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출범 한 달밖에 안 된 정권인데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은 정부와 여당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야당은 필요하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