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챈들러 빙 역으로 사랑받았던 매슈 페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집 안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직접 사인은 익사로 추정되지만, 그의 죽음으로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오피오이드’ 중독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1997년 제트스키 사고를 당한 뒤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인 바이코딘에 중독됐다고 한다.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통증 신호 자체를 차단하면서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중독성이 강해 암 환자 등 통증이 극심한 중증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1996년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퍼듀 파마는 오피오이드 계열인 ‘옥시콘틴’을 출시하면서 ‘안전하고 중독성이 적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약물 실험 결과를 조작해 중독성·남용 위험을 축소했고, 미 전역에 영업사원을 보내 의사들을 적극 공략했다.
존슨앤드존슨 등 다른 대형 제약사도 자사의 오피오이드 제품을 팔면서,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숨긴 채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다. 의사들은 오피오이드계 약물을 ‘만병통치약’처럼 환자들에게 처방했고, 의사를 믿고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오피오이드에 중독되어갔다. 신체적·정신적 금단현상 탓에 약을 계속 찾게 되고, 내성이 생기면서 복용량은 계속 늘게 됐다.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은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호흡 정지로 인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50만명이 처방 및 불법 오피오이드 과용으로 숨졌다고 한다. 또한 의사의 처방 오피오이드에서 시작된 문제는 이제 헤로인·펜타닐 등 싸고 강력한 합성 오피오이드와 불법 마약으로 확산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좀비 마약’으로 알려진 펜타닐은 2㎎만으로도 호흡을 멎게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18~45살 청장년층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과다 복용이다.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전염병)’이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한국도 오피오이드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지난 6월 펜타닐 패치를 한 사람에게 4826장 처방한 의사가 구속 기소되는 등 합법적 의료행위 명목으로 오피오이드 약물이 대량 처방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적발된다. 미국 사회의 오피오이드 실패 경험을 새겨야 할 때다.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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