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카르텔.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절로 떠오른 키워드였다. 쿠데타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영화에서 보듯 공식적인 상관 명령보다 ‘형님’이라 부르는 하나회 선배들의 지시에 목숨 바쳐 충성하는, 그래서 공조직을 마비시키는 게 사조직의 무서움이다. 이 사조직이 권력을 지향할 때, 특히 12·12 때처럼 무력을 지니고 있을 때, 괴물이 된다.
하나회는 전두환·노태우의 육사 11기에서 비롯된다. 육사 11기는 1951년 경남 진해에 육군사관학교가 정식 개교할 때 입학한 이들이다. 이전 10기까지는 단기 교육만 이수한 것과 달리, 11기부터는 정규 4년제 교육을 받았다. 11기 중 전두환·노태우 등 영남권 출신 위주 친목 모임이 하나회다. 그런데 5·16 군사정변이 터지자, 서울대 교관 전두환이 후배 생도들의 지지 시위를 끌어내 박정희의 호감을 사면서 날개를 달았다. 비밀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비호 아래 인사 때마다 끌어주고 밀어줘 1979년 무렵엔 이미 요소요소에서 군을 장악했다. 성적 우수자 위주로 뽑은데다, 인사 때마다 요직을 맡으니 경력 관리와 경험이 자연스레 쌓여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하나회 가입 제의는 명예이자 출세가도로 여겨졌다. 하나회의 4개 항 선서 항목을 보면,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에 복종한다’, ‘의리와 맹세를 저버리면 인간적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을 각오한다’는 문구가 있다. 군의 공적 명령보다 우선하는 하나회의 이 ‘합의된 명령’이 12·12 쿠데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공조직 내 엘리트 중심 사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선민의식이다. 성적 우수자, 경력, 경험, 네트워크 등이 쌓이면서 실제로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회’가 신분화되면서, 인사 독식이 정당화된다. 두번째는 보상심리다. ‘서울의 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전두광(전두환)이 쿠데타를 앞두고 흔들리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들 서울대 갈 실력 됐잖아? 근데 왜 육사 왔어? 집에 돈 없고 빽 없어서 먹이고 재워주는 육사 온 거 아니야? 여까지 와가 저딴 똥별 새끼들 때문에 옷 벗으면 느그들 억울해, 안 해?” 요즘 보상심리는 한 계단 더 올라 기득권층의 기득권 공정화다. ‘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갔으니, 응당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이 두가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한다. 겉으론 불공정에 대한 의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진로나 출세 장애에 대한 개인적 한풀이다. 쿠데타나 권력 장악은 늘 ‘애국’(요즘은 ‘정의’)을 명분 삼지만, 실상은 ‘자리 욕심’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의 봄’ 속 ‘하나회’를 보며 ‘윤석열 사단’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초법적 무력을 행사한 40년 전 신군부와 민주적 제도 아래 수사권을 지닌 검찰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과하다. 그러나 군이 정치 개입을 못 하는 지금, 검찰은 가장 큰 공권력을 지닌 집단이다. 이 공권력이 사조직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직후 검찰 인사는 ‘특수통’으로 채워졌다. 당시 기사 제목이다. ‘‘윤석열 사단’ 특수부장들 중앙지검 전진 배치’(경향신문), ‘“제 새끼 감싸는 건 미담 아니다” 여당도 우려하는 ‘윤석열 사단’’(중앙일보), ‘‘윤석열 사단’·특수통 전성시대’(연합뉴스). 3년 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검찰 인사에 대한 기사 제목이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심하다”…검 특수통 ‘끼리끼리 인사’ 논란’(동아일보). 이번엔 검찰인사위원회 심의 절차도 생략했다. ‘끼리끼리’와 절차 무시라는 인사 기조는 검찰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전반으로 확대돼 있다.
윤석열 총장 첫 인사 당시,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윤석열 사단’ 3인방, 모두 검사장 승진’. 지금 그 3인방 중 두명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다. 40년 전 군부는 ‘반란군’과 ‘진압군’이 나눠져 있었지만, 지금 검찰·법무부·대통령실은 일계를 이루고 있다. 이런 세상에선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다.
지연·혈연·학연은 사람에게 원초적 동질성에서 오는 심리적 편안함을 제공한다. 그 편안함은 무엇이든 감싸주는 1차 집단의 ‘무조건적’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연’은 사적 위안에서 끝나야 한다.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순간, 제어할 수 없는 탐욕이 개입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자기 정화 형태가 아닌 외부에서 해야 하고, 중첩으로 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 하나회 해산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거센 반발에 김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국민들이 기차를 몰아야 한다.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