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상은 1968년 4월27일에 세워졌다. 박정희 정권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위원장 김종필)를 통해 ‘1호 동상’으로 제안한 지 1년 반 만이다. 박 대통령은 건립비 983만원을 전액 부담하고, 김세중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 등 각별한 열의를 보였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5·16 군사쿠데타(1961년)의 주역이라는 사실에서 두터운 정치적 함의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통치자의 정당성과 권위의 확보를 위해 역사적 인물의 조상(Statue)을 활용하는 행위는 ‘상징물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일찌감치 그 효용 가치에 주목한 이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다. 제위가 안정될 무렵, 제국의 중심인 ‘포룸 로마눔’ 한가운데 양부 카이사르의 기마상을 세웠다. 이어 기원전 13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포룸을 따로 만들었다. 특히 공을 들인 ‘평화제단’에는 신의 후예인 자신의 가문(율리우스)이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후견했다는 식의 서사를 빼곡히 새겨 넣었다. 이런 종류의 이미지 정치는 이후 인류사에서 무수히 복제·변주됐다.
물론 모든 상징물이 반드시 정치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기억과 존경의 의미를 담은 위인의 조상은 어떤 국가나 도시에도 다 있다. 다만, 해당 인물에 대한 현세의 평가가 변하면 상징물의 운명도 바뀐다. 정치적 인물일수록 부침이 심하다.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할 때 레닌·스탈린 동상도 성난 군중의 손에 파괴됐다. 4·19 혁명 이후 서울 남산에 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동상은 두동강이 났고, 맥아더 장군 동상도 여러번 존폐 기로에 놓였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던 로버트 리 장군(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사령관)의 초상화와 흉상이 철거됐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반인종차별주의 여론이 높아지자 미 의회 산하 ‘명명위원회’가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군의 흔적을 없애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국가가 노예제의 끔찍함을 과소평가하던 1930년에 (상징물이) 설치된 점”을 지적한 뒤, “역사 지우기가 아니라, 미래의 군을 이끌 지도자들이 미국의 국가적 이상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크로체의 말은 동상(흉상)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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