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원 묘소 철거 주장
시민들, 이장 찬성 입장 늘어
시민들, 이장 찬성 입장 늘어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묘소 안에는 1924년 숨진 옛 소련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레닌의 주검이 방부 처리가 된 채 안치돼 있다. 붉은색 화강암으로 꾸며진 레닌묘소는 소련 시절 국가의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취급돼 왔고,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모스크바 제일의 관광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1일 “레닌 사후 87년이 지난 러시아에서 레닌묘소 존치를 둘러싼 논쟁이 재현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의원은 레닌 사망 87주기가 되는 지난 21일 정당 누리집에 “레닌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치적 인물로 그의 묘가 러시아의 심장부에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묘소 철거를 주장했다. 이후 그의 주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말 공산권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레닌묘소 철거 문제는 이따금 등장하는 단골 정치 이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90년대 한차례 철거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공산당과 소련의 옛 시절을 기억하는 장년 세대의 반대에 밀려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점점 철거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1997년 설문조사에서는 37%가 철거, 38%가 존치였지만, 최근에는 40% 대 31%로 입장이 바뀌었다. 메딘스키 의원이 당 누리집을 통해 벌린 약식 설문조사 결과는 69%가 철거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이 언젠가는 있을 줄 알았지만 너무 일을 밀고나가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원들도 “내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런 일을 추진하는 이들은 우리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등의 격렬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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