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3월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에서 신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 전 새누리당 의원과 육사 생도 등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연합뉴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지원단(연대급) 행정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벌써 30년 전이지만,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육사 행정병은 ‘꽃보직’에 해당될 터이고 크게 고생한 적도 없어, 군대 얘기가 나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육사 전체를 지원·총괄하는 근무지원단 행정병이어서 당시 육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엿보기는 했다. 당시엔 전체 생도가 1200명, 근무지원단 소속 장교·사병이 1500명가량 됐다. 육사에서 가장 큰 행사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3월 졸업식이다. D-50일부터 비상이고, 매일 아침 간부회의 뒤 과장(대위)이 전해주는 단장(대령) 지시사항을 먹지 깔아 넣고 타자 세게 쳐서 각 대대에 하달하고, 저녁엔 각 대대로부터 올라온 ‘금일 진행사항’과 ‘익일 예정사항’을 취합했다. 대통령이 둘러볼 가능성이 0%인 육사 구석진 곳 화장실 변기까지 염산 들이부어 미백 청소하고, 화랑연병장 건너편 박물관에 전시된 구한말 대포 포신이 대통령을 향한다며 대포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고참에게 ‘좀 과하지 않냐’고 했더니, “요즘(노태우 대통령)은 헬기 타고 오지만, 예전(전두환 대통령)에 자동차 타고 올 때는 정문부터 연병장까지 아스팔트를 하이타이 풀어 걸레로 닦았다”고 전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옛 기억을 되살려냈다. 독립전쟁 영웅 흉상이 충무관(종합강의동) 앞에 설치된 건 2018년이지만, 육사에는 이런저런 동상이 꽤 많다. 가장 유명한 건 화랑연병장 건너편에 있는 재구상(강재구 동상)이다. 생도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예복을 착용하고 분열을 하면서 부하들을 위해 몸을 던진 강재구 소령 동상 앞에서 1주일간 생활을 반성하며 새롭게 결의를 다진다. 한국전쟁 당시 현 육사 체계를 마련한 제임스 밴플리트 전 미8군 사령관, 2015년 건립된 안중근 의사 동상 등도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 영웅들 가운데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 바깥으로 철거하고, 이회영·김좌진·지청천·이범석·박승환 흉상은 육사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육군박물관이 거론된다. 박물관은 주로 방문객 견학 코스로, 생도들은 입학 때에나 둘러볼 뿐이다. ‘독립영웅들과 생도들이 마주치지 않게 하겠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육사의 외형적 시초는 미 군정이 통역관 및 군간부요원 확보를 위해 1945년 12월5일 개교한 ‘군사영어학교’다. 이는 46년 5월1일(육사 개교기념일) 국방경비사관학교로 이어진다. 이 군사영어학교에 일본군·만주군 출신이 대거 들어왔다. 백선엽·정일권·장도영 등이 1기로 들어와 국군 장교로 신분이 세탁됐다. 1952년 백선엽에서 1969년 김계원에 이르기까지 육군 참모총장이 모두 이 군사영어학교 1기 출신들이고, 모두 일본군 출신이다.
2018년 이회영 선생을 포함한 독립영웅 흉상들이 육사에 세워진 것은 육사의 뿌리를 일본군이 아닌 독립군을 길러낸 1919년 신흥무관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는 중대한 기점이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지만, 군은 그때까지 국군의 뿌리를 해방 이후 미 군정에 의해 창설된 1946년 남조선국방경비대로 봤다. 2018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 책자를 발간해 처음으로 독립군과 광복군(1940)을 우리 군 역사에 편입시켰다. 국군의 정통성을 독립군에 두려 한 것이다. 이 책은 육사 교재로 사용됐다. 당시에도 일부 육사 출신 퇴역 장성들 가운데 반대가 있었지만, 목소리가 크진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당이라며 육사에서 쫓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육사의 뿌리를 다시 만주군관학교로 두자는 것처럼 들린다.
육사는 반공학교가 아니다. ‘주적관’ 운운하지만, 군의 존재 이유는 국민 보호다. 주적을 무찌르는 것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 군은 4·3, 5·16, 12·12, 5·18 등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거나 쿠데타를 일으킨 바 있다. 그때마다 반공을 국민 보호보다 앞자리에 내세웠다. 군의 부끄러운 역사다. 육사의 정체성은 호국간성이다. 반공간성이 아니다. 국군은 북한만 막으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적으로부터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를 결정한 육사는 ‘백선엽 웹툰’을 홈페이지에 복구했다. 독립군 토벌이 목적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만주육사에 지원했고,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오욕을 덮고, 이젠 사후 존경까지 받으려는 백 장군의 삶과 한평생 조국광복 위해 몸 바치고, 아내는 일제 고문으로 숨지고, 아들은 일본군과 교전하다 전사하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진 홍 장군의 삶 중에서 생도는 어떤 삶을 기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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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8월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