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 성일종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긴급 토론회 ‘후쿠시마 괴담 어떻게 확산되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김진철 | 문화부장
인터넷에서 ‘광우병’을 검색하면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이 뜬다.
“본래 4~5세의 소에게 주로 발생하는 해면상 뇌증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죽어가는 전염성 뇌 질환이다.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면 기억력이 상실되고 이상 행동을 보이며 정신지체 및 치매가 생기고 수족의 무의식적 운동 등이 나타난다.” 지난 5월에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한 도축장에서
광우병이 발생했고,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렇다. 광우병은 있다. “거짓에 맞서 팩트를 추구하고 진실을 수호하면서 100년을 이어왔다”는 <조선일보>가 퍼뜨리는 광우병 괴담이, 괴담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다가올수록 괴담론이 더욱 극심해지는 탓에 ‘오직 팩트’라는 그 신문의 구호조차 괴담처럼 느껴진다. 일부 시민단체가 ‘반이명박’을 위해 광우병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마치 금방이라도 ‘뇌송송 구멍탁’이 될 것처럼 선동했다는 그 신문의 주장 역시 거짓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이른바 4대 선결 조건 중 하나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추진하자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를 출입하며 관련
기사를 썼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보다 미국 눈치 보기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주권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시민들이 국민건강을 하찮게 여겨 검역주권을 쉽게 내팽개친 정부를 비판하며 촛불을 들고 나서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니다. 마침내 2008년 5월8일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걱정하는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하여 국민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괴담을 되뇌는 이 신문 주장대로라면 명박산성까지 쌓고 촛불시위에 맞서던 이명박 정부가 괴담을 받아들인 셈인가. 이 신문과 함께 최근 괴담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중앙일보>는 당시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는 시민 기사를 내보냈는데, 사진 속 시민이 기자인 사실이 들통나
조작한 사진을 보도했다며 사과문까지 냈다.
몇몇 신문들이 과거 광우병 사태까지 활용해 괴담을 운운하는 이유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여론 역시 괴담에 기반해 있다고 덮어씌우기 위해서다. 괴담의 반대편에는 과학이 있다는 듯, 이런 신문들이 어느덧 과학수호자가 되기라도 한 양 볼썽사납게 과학을 외쳐댄다. 그러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60년 전 펴낸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학이 절대적 이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광우병이든 핵오염수든 논란이 많은 사안일수록 과학에 앞서 상식을 먼저 짚어보는 게 타당하다.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검역 기준을 완화하는 정부를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핵오염수가 드넓은 대양에 뒤섞여 극미량으로 희석될지라도 자연에든 인간에게든 좋을 턱이 있겠는가.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를 순순히 수용하고 옹호까지 하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중시한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2010년에도 특집기획 기사로 광우병 괴담을 설파하는 괴이한 일에 나섰다. 당시 2년 전 맹렬한 국민적 분노 앞에 고개를 조아렸던 이명박 대통령은 “좋은 기획을 실어 줘서 감사하다”며 이 신문을 칭찬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도 이 보도에 힘을 보태며 촛불시위를 사기극이라고 몰아붙였다. 이때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에서 정책국장을 맡고 있던 수의사 박상표가 나섰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및 농림부와 유럽전문가위원회가 펴낸 국내외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인간광우병) 관련 보고서를 인용해 관련 특집기사를 통렬히 반박하며 “쓰레기 수준의 짜깁기와 왜곡으로 가득 찬 광우병 괴담”이라고 일갈했다. 지식인으로서 상식으로서의 과학에 몸바친 박상표는 이제 안타깝게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몇몇 신문은 기자들의 이름을 바꿔가며 끈질기게 광우병 괴담론을 펼치고 있다. 식상하지만 위태롭다. 안타깝고도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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