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전종휘 | 사회정책부장
이 정부가 개혁의 동력을 끌어모으기보단 엉뚱한 곳에 전선을 형성해 불필요한 적을 만들어 주의를 분산하는 데 유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진 지난 1년2개월이란 시간으로 충분하다. 노동개혁 한다더니 그동안 깎인 임금 올려달라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고 화물연대 파업엔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데 이어 안전운임제는 사실상 폐지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부패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1주에 69시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한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좌충우돌한다.
노동·교육·연금이란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노동개혁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에서 교육개혁이라도 제대로 할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마저도 대통령실이 6월 수능 모의평가 결과도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킬러 문항’은 출제하지 말라는 대통령 지시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키지 않았다며 담당 교육부 국장을 날리고 평가원장은 그 등쌀에 못 이겨 사퇴했다.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하는 초고난도 문제가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은 맞으나, 교육개혁의 전선을 고작 ‘킬러 문항’에 맞추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바람에 개혁 과제 논의 폭은 또 크게 축소됐다. 정작 이후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도 별 볼 일 없다. 공고한 대학 서열체계를 중심으로 이뤄진 교육시스템을 바꿀 계획 대신 ‘이권 카르텔 척결’이라는 대통령 엄포만 난무한다.
지난주엔 정부와 여당이 모처럼 달달한 얘기를 내놨다. 집권당 정책위의장이 실업급여를 두고 설탕물에 향료를 넣은 시럽에 빗대어 ‘시럽급여’라는 살벌한 농담(?)을 던졌다. 최저임금 80%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이 너무 많아 가장 바닥의 실직자한테 구직 동기를 떨어뜨리는 폐해가 발생하니 이들한테 실업급여가 더는 달달하지 않도록 하한액을 깎거나 아예 폐지하겠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의 선택적 인용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 고용보험은 보장 범위가 작은 게 약점이라는 지적,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고 실업이 빈번한데도 정부가 구직자한테 이른 취업을 강요하는 바람에 이들을 계속 질 나쁜 일자리로 내몬다는 지적은 쏙 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려는 취지로 ‘실직자가 실업급여에 의존하기보다 빨리 근로 의욕을 제고해 재취업을 촉진하고 자립을 도와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으나,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과 달리 유난하게 자발적 실직자한텐 실업급여를 주지 않는 한국 실업급여의 문제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실제 노동현장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실직 뒤에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원성이 넘쳐난다. 노동부가 지난 6월 내놓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94%대인 반면 비정규직은 80.7%에 그치고 건설노동자 등 일일근로자의 경우엔 66.4%까지 떨어진다. 1995년 시행된 고용보험제도의 취지가 실직자의 단순 임금 보전에서 나아가 재교육과 적극적인 구직활동, 취업에 이르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곤 해도 실업급여의 가장 끝단에 있는 이들의 급여 액수를 낮추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일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노동자와 사용자가 보험료를 분담하는 고용보험기금 사용처를 놓고, 기금 마련에는 극히 미미하게 기여하는 정부가 기금 사용 결정권을 휘두르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2022년 고용보험기금 결산보고서를 보면, 전체 기금 수입액 22조7천억원 가운데 노동자와 사용자가 낸 보험료 수입이 16조원가량이고 정부가 재정을 열어 채운 건 일반회계전입금 1조3천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사태에 닥쳐 일시적으로 늘어난 액수가 이 정도다. 나머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가져온 예수금과 기존 기금에서 한국은행과 금융기관 등에 예치했다 회수한 금액이다. 정부가 남의 돈 갖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작 고용보험기금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고용보험위원회를 열어 노동자와 사용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미 노동조합을 한국 사회 3대 부패세력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대화 단절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이 정부에 기대하기엔 너무 과도한 욕심일까? 국민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든 제도를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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