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급여 삭감·폐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직 청년 여성 비하 공개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똑똑! 한국사회]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자유를 중시하는 정부와 여당이 실업자가 실업급여로 선글라스를 사건 우산을 사건 무슨 상관일까마는, 여성과 청년을 주된 부정수급자로 비난하는 보도를 보며 20여년 전 외환위기 당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거의 유일한 실업대책이던 공공근로사업에 대한 비난이 떠올랐다. 주요 일간지마다 ‘돈만 펑펑’ 쓴다느니, 밍크코트를 입고 와서, 그랜저를 타고 와서 공공근로를 한다느니 하는 기사가 넘쳐났다. 당시 국책연구기관에서 이 정책 연구를 담당하던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어서, 특히 집요하게 이 사업을 공격하던 기자에게 수십만명 참여자 중 이런 사람을 몇명이나 보았냐고 물어봤다. 그는 겸연쩍게 답했다. 한명 보았다고.
상당수 참여 여성의 남편이 실직 상태였고 모든 국민에게 안전망을 제공할 책임이 정부에 있는데도, 주된 생계부양자가 아닌 여성의 참여율이 높다는 것도 언론의 주된 비난 중 하나였다. 실태조사 중 만났던 고학력 여성인 저소득 아동 생활지도사업 참여자가 자신보다 돌보는 아이들을 더 걱정하며 한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지역에 건설 일용직분들이 주로 사셔서 일자리를 잃은 부모 때문에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좀 더 영양가 있는 간식을 챙겨주고 싶은데…. 그래도 이거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근거 없는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실업대책에 꼭 필요한 예산을 투입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1990년대 후반, 우리 사회 실업자와 그 가족은 훨씬 더 참혹한 시간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현재 실업급여 수준이 높다는 데 동의하지 않지만, 높은 실업급여가 수급자들이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도록 한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정부와 여당은 항상 여성, 청년, 노동자에게만 문제를 제기하나? 실업급여의 잦은 재수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은 퇴직금을 안 주려고, 불안정 노동을 더 활용하려고, 취업 기간을 줄이고 해고를 남용하는 사용자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급여 수준이 더 낮아져 실업자가 나쁜 일자리라도 허겁지겁 매달리게 되면 사용자는 지금보다도 더 임금을 낮추고 더 고용 조건을 악화시켜 더 나쁜 일자리만 범람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실업급여 지출도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의 이런 도덕적 해이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것인가?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주에서 실업보험을 위한 급여세(payroll tax)를 사용자만이 내는데, 더 중요한 사실은 보험의 원칙에 충실하게 일시 해고(layoff)를 남용한 사용자가 그러지 않은 사용자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주의 경우 기준 임금 8천달러에 대한 신규 사용자의 세율은 2%인데, 통계가 쌓인 수년 뒤에는 해당 기업이 얼마만큼의 실업보험 지출을 유발했는가에 따라 최저 0.07%에서 최고 18.78% 사이 세율을 적용받는다. 해고 역시 급여세의 추가 지출을 유발함에 따라 사용자는 좀 더 신중하게 인력 감축을 결정하게 된다. 이런 기획을 할 능력이 없다면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제안한다.
“오직 굶주림만이 가장 사나운 맹수를 길들이고, 예절과 공손함, 순종과 복종을 가르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굶주림만이 그들(빈민)을 자극하여 일하도록 내몰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법이 그들이 굶주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 노예는 노동하도록 강제될 수 있으나 자유인은 그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기 위해 인간공동체를 짐승에 비유한 타운센드의 말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산업혁명 시기에나 걸맞을 이런 수준의 말이 통용되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도덕적 해이든, 회계 부정이든, 부정부패든, 땅 투기든, 사회의 모든 집단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공정과 상식의 칼날을 겨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