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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실업급여, 그 이상의 안전망을 원한다

등록 2023-07-17 18:50수정 2023-07-18 02:41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는 모욕과 혐오 생산의 장이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내뱉은 ‘시럽급여’라는 언설이 언론을 뒤덮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사치’나 ‘과도한 복지’로 둔갑시키는 언설은 보편적 복지를 축소·폐지하고 무한경쟁주의를 확대하려는 이들의 단골 메뉴다. 이때 시민 중 특정 계층이 타깃이 돼 조롱을 받는다. 여기서 ‘이름 붙이기’(네이밍)가 이뤄지는데, 그 단어는 ‘프레임’이 되어 공론장을 휘젓고 보편적 인식과 공감대를 파괴한다.

국민의힘 공청회에서 겨냥된 시민은 ‘여성’, ‘청년’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여당이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토론회에 나와서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 ‘해외여행’, ‘샤넬 선글라스’, ‘옷’ 같은 말들로 낙인과 혐오에 힘을 실었다. “남자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갈라치기는 사실·현황 확인이 먼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4일 논평에서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고용보험통계연보에서 실업급여 수급자격 인정자 현황을 보면, 일당 8만원 이하 구간은 여성이 많지만, 8만원 초과 구간은 남성이 여성의 2.1배다. 수급자 연령도 49살 이하는 여성이 많지만, 60살 이상은 남성이 1.5배 많다. 실업급여 수급 사유도 정년퇴직은 남성이 1.6배 많지만, 계약 만료, 공사 종료는 여성이 1.3배 많다. 저임금으로, 더 짧은 기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실업급여를 받는 이가 주로 여성임을 이 통계가 보여준다. 여당과 고용부처 담당자는 감추거나 침묵하는 현실이다.

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열린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을 규탄하고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 및 실업급여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이 1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열린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을 규탄하고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 및 실업급여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성노동연대회의도 14일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여당과 정부를 규탄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실업급여 지급은 성별, 세대별, 산업별, 규모별 고용 중단의 각기 다른 상황을 투명하게 보여주는데, 여성 청년을 콕 짚어서 달콤한 실업급여로 공적 기금을 가로채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저의가 무엇인지” 물었다.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활동가는 “부당하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에도 명확한 증거를 토대로 한 피해 입증 없이는 자발적 퇴사로 여겨지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정부는 복지 수급자에 대한 의심과 낙인, 혐오를 프레이밍하면서 국민들 사이 제로섬게임을 부추기는 걸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이 ‘시럽’으로 덮으려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별 임금격차 27년째 1위, 여성 노동자의 46%가 비정규직이라는 한국 여성노동의 현실이다.

필자가 일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는 부설 열림터가 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학업이나 생업을 꾸리고 치유하며 머무는 쉼터다. 10대나 20대 때 와서 머물다가 또 다른 삶을 향해 간다. 그런데 10대 후반, 20대에 마주하는 현실이 혹독하다. 몇년 전 후원금으로 ‘또우리폴짝기금’을 마련해 퇴소한 생활인 ‘또우리’에게 소액이나마 생활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그 지원 신청서들에서 그들의 빠듯한 삶의 틈새들을 본다. 자격증 공부, 친구에게 밥 사기, 엄마와 여행 가기, 고양이 종합검진, 집 정리, 심리상담 받기 등등. 영수증 증빙보다 신청 전후 맥락을 듣는 사전·사후 인터뷰에서 와닿는 것들이 많다. ‘또우리’들은 “나를 응원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달 열림터와 함께 ‘우울증이 덫이 되지 않으려면: 우울증 갤러리 이야기하기’ 집담회를 열었다. 가정 폭력, 성차별, 일터 폭력을 누적적으로 겪어온 10~20대 여성이 온라인에서 더 쉽게 착취당하는 상황인데도 정부나 일부 언론이 이를 단순한 심리적 문제로 치부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엔(n)번방’ 사건을 통해 사이버 성착취 카르텔과 그 작동 메커니즘이 만천하에 드러난 게 몇년 전인데, 이를 개인의 심리적 문제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을까.

‘시럽급여’라는 모욕 주기, 조롱에 반대하느라 온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여당과 정부에 말한다. 최소한의 실업급여, 그 이상의 안전망을 원한다. 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 그 이상의 차별 반대와 평등이 필요하다. 피해자에 대한 좁고 엄격한 지원, 그 이상의 보편적인 주거권 보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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