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 서울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현재 △살인 △강도 △흉기를 동원한 성폭행 혐의 피의자 등에 적용하는 신상공개 대상 범죄를 △아동 성범죄 △불특정인 대상 무차별 범죄 △내란·외환·테러·마약 등의 중대 범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재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피고인도 공개 대상에 포함하기로 하고, 관련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소위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 최근 발생한 흉악범죄를 계기로 대통령실과 여당이 신상공개 범위 대대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에 한정된 경향은 아니다. 신상공개라는 수치형(명예형)의 정책수단화는 201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였다. 여론 지지도 압도적이었다.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신상공개 찬성 여론은 늘 70%를 상회해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최다 동의를 얻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엔(n)번방 사건 용의자 신상공개’(약 271만명)였다. 그 흐름 속에서 헌정사상 가장 광범위한 범죄자 신상공개 입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필자는 범죄자 신상공개 확대에 반대한다. 반대하는 논자들의 근거는 대부분 ‘무죄추정의 원칙’, ‘공개 기준과 절차의 부실함’ 등이다. 필자는 범죄사회학의 관점에서 주장하려고 한다. 신상공개라는 것이 과연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인가? 신상공개라는 ‘사회적 매장’의 스펙터클 뒤에서 국가의 범죄예방 실패가 감춰지는 것은 아닌가?
먼저, 범죄예방 효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일 “국회에서 통과가 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잘 담당”해야 한다며, 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특별법안의 7월 국회 처리를 공언했다. 신상공개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전혀 입증된 바 없는 주장이다.
국내 형사정책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2020년 보고서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성범죄자 신상공개 및 범죄 통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상)공개 대상자의 재범 위험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성범죄자의 재범을 억제하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아직 10여년밖에 되지 않아서일까? 성범죄자 신상공개가 가장 활발한 미국의 경험적 연구들 다수 역시 신상공개로 성범죄 재범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되레 재범률을 높인다는 결과가 여럿이다.
범죄자 개인의 재범을 막지는 못해도, 사회 일반에 경각심을 줘 범죄율 자체는 떨어뜨리지 않을까? 위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신상공개 제도 시행 이후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 및 인구 10만명당 범죄율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고 “초범자의 비율도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누구를 어떻게 처벌할지는 국가가 휘두르는 가장 무서운 칼(공권력)이다. 그 때문에 반드시 구체적 정책 근거를 통해서 입안되고 실행돼야 한다. 그런데 여당의 대표는 범죄예방 효과가 확인되지 않는 신상공개를 마냥 확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단다. 전형적인 엄벌주의 포퓰리즘이다.
다음으로, 국가의 실패가 감춰지고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가해자 신상공개를 원한다며 한 말이다. “출소하면 그 사람 50살인데. (…) 저렇게 대놓고 보복하겠다는 사람을 아무도 안 지켜주면 저는 어떻게 살라는 건지.” 피해자의 진짜 요구는 보복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제도에서는 그것이 막막하니 신상공개에 기댔던 것 아닐까. 재판 단계에서의 신상공개만으로 (항소심에서 선고된) 20년 복역 뒤 보복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사건 피해자의 절규에 대한 국가의 답변은 가해자 출소 뒤 보복 행위를 막는 정교한 정책이어야 했다.
“국가는 강력범죄 피의자를 대중 앞에 내세우고 전시함으로써 (범죄 예방과 안전 확보라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를 손쉽게 완료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발간한 관련 보고서 중 일부다.
입법과 같은 제도변화의 기회(동력)는 자주 오지 않는다. 범죄 피해자 희생 이후 여론의 관심과 공분이 높아질 때, ‘해당 범죄를 왜 막지 못했는지’에 관한 논의가 겨우 등장한다. 그 소중한 기회를 면밀한 정책 검토나 예산 확보 없이, 범죄 유형과 구조 분석 없이, 그저 형량 올리고 신상공개 확대로만 소진한다면, 이는 범죄 양산 정책에 다름 아니다.
여론이 신상공개를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할지, 제대로 된 유무죄 판단과 형량을 선고할지 신뢰하지 않기에 가장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응징을 선호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무는 이런 불신을 적극 해소하는 노력이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는 ‘불신의 결과’를 ‘문제해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신상공개 만능주의 시대다. 스쿨존에서 아동이 죽어나가니 음주운전자 신상을, 전세사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악성 임대인 신상을 공개하겠단다. 목표는 무엇인가. 범죄자들 얼굴에 침 뱉는 것인가. 제도와 예산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인가. 후자라면 신상공개는 오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