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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이 출제한 ‘공정 수능’, 그 자체가 킬러 문항이다

등록 2023-06-27 16:52수정 2023-06-28 02:40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아침햇발] 최혜정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 올린 ‘공정 수능’ 화두는 그 자체가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교육부 업무보고 중 갑작스레 나온 윤 대통령의 수능 지시에 교육현장은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진입하고 있다. 출제 범위 논란이 벌어지자 대통령실은 ‘학교 수업과 공교육 교과과정은 다른 말’이라고 하고 여당은 “학교에서 안 배운 것을 내지 말라는 것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을 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고 주장하니, 전 국민 대상 문해력 테스트인가 싶기도 하다.

교육개혁의 당위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왜 지금, 갑자기, 수능인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대통령실 설명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 3월부터 ‘공정 수능’ 기조를 교육당국에 주문했는데 6월 모의고사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 기폭제가 된 것 같다. “입시 수사를 많이 해 교육 전문가”라는 윤 대통령은 그동안 교과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이 수능에 출제되면서 사교육 학원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킬러 문항→사교육비 증가→저출산·노후빈곤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매년 수능 문제를 풀어보는 등 교육 문제에 평소에도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다만 킬러 문항을 없애면 고교·대학 서열체제와 줄세우기식 입시에 따른 한국 사회 고질적 병증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에 가깝다. 사교육비는 수능 난이도에 상관없이 해마다 가파른 증가율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미 현장에선 준킬러, 준준킬러 공략을 위한 설명회가 벌어지고 있다. 자사고·특목고 존치 등 사교육을 되레 강화하는 방향도 모순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의 목표와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은 채 킬러 문항 삭제에만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수능 논란은 윤 대통령 국정운영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맥락과 이면이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주범’을 상정한 뒤 ‘단죄’하는 것이다. 수사하듯 사안을 바라보고, ‘환부를 도려내어’ 해결하는 방식이다. 사회 정화를 위한 윤 대통령의 고군분투 뒤에는 어김없이 고독한 결단이 수반된다.

윤 대통령은 사교육비 증가의 원흉으로 킬러 문항과 함께 이를 출제한 교육당국과 사교육 관계자들 사이의 ‘이권 카르텔’을 지목했다. 부당 공동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일뿐더러 부정한 결탁이 사실이라면, 입시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수능 게이트’로 비화될 사안이다. 하지만 카르텔의 증거는 제시된 바 없고, 현재로선 교육부 등 관계부처가 허위과장광고, 과다한 수강료 등의 신고를 받아 단속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6월 모의고사에서 ‘공정 수능’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며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이권 카르텔의 증거”로 지목되며 경질됐는데, 무엇이 킬러 문항인지는 분석 중이라고 했다. 심증으로 잡아넣은 뒤 물증을 찾는 격이다. 교육부는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와 ‘공정수능출제 점검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하고, 수능 일타강사들은 사교육 확대의 주범으로 몰려 세무조사를 걱정할 판이다.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을 지목해 제거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6월 정치참여 선언을 하며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한다고 했고,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적폐, 부패의 카르텔을 혁파”하겠다고 다짐했다. 카르텔은 전임 정부에 이어 사회 각 분야로 다변화되는 추세다. 윤 대통령은 노조는 “일자리 세습, 기득권의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이권 카르텔”이라고, 시민사회를 겨냥해선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지목하면, 정부와 수사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패턴도 반복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야당, 비판 언론 등은 이 기조 아래 척결 대상으로 취급된다.

다만 이번 수능 논란에서 보듯 국정은 ‘범인 색출’과 ‘때려잡기’로 운영하기에는 너무 복잡다단하다. 사안을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무 자르듯 결정하는 방식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국가 중대사가 윤 대통령의 독자적 판단으로 결정되고, 즉흥적이고 돌출적인 발언에 정책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 홀로 진두지휘하는 무차별적인 ‘카르텔과의 전쟁’에 국민만 5년 내내 전시 상태에 시달리게 생겼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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