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재욱 화백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말은 같지만, 둘 사이엔 12년의 시차가 있다. 제18대 대선을 1년 앞둔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는 ‘쇄신 1호’ 방안으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같은 말을 했다. 당은 달라도 비판 여론에 떼밀려 내놓은 모양새는 엇비슷하다.
불체포특권은 영국에서 발원했다. 국왕의 절대권력에 맞서 법제화가 이뤄진 것은 1604년의 일이다. 영국 하원은 의원에 당선됐음에도 회기 개시 전 수감돼 있던 토마스 셜리 경의 석방을 명하고, ‘체포되지 않을 권리’를 ‘의회특권법’에 못박았다.(영국의회 누리집) 다만 ‘회기중’에만 유효하도록 제한을 뒀다. 개인의 신변 보호가 아니라 입법부의 권능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1789년 제정된 미국 헌법이 제1조(제6항)에 이를 명문화하며 헌법적 권리로 격상됐고,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 헌법에 넣은 뒤 줄곧 유지하고 있다.
최근 불체포특권이 다시 도마에 오른 건 올 들어 이 대표를 시작으로 ‘돈봉투 사건’의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이 잇따라 부결되고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이 대표는 대선에서 ‘중대 범죄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하며 “저와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겐 필요하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강도와 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우리 헌법(제44조)과 국회법(제26조)은 의원 체포의 경우 국회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국회입법조사처는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 직무수행을 위한 것이므로 의원 개인은 포기할 수 없다”는 해석(<이슈와 논점> 제498호)을 내놓은 적이 있고, 헌법학계의 통설도 같다. 물론 예외 사례가 없진 않다. 21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정찬민·하영제 의원(이상 국민의힘)은 본회의 통과를 당사자가 적극 호소하거나 소속 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관철시켰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법원 출석 날짜를 회기 뒤로 미뤄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받았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가능하지만 절로 되지는 않는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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