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공공돌봄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조기현 | 작가
이레는 올해 초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했다. 돌봄과 학업, 취업 준비를 병행하면서 얻은 결실이었다. 이제 남들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원하고 원하던 취업이었는데, 직장 생활을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중증장애인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부터 전담했으니, 올해로 11년차다. 전일제 일자리와 어머니 돌봄을 병행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면 불안감만 커졌다.
어머니는 사지마비로 와상 생활을 하기에 24시간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이전에 받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시간만으로 이레의 전일제 근무는 불가능했다. 어머니의 집을 따로 마련했다. 1인가구가 되니 서비스 시간이 늘었다. 어머니의 돌봄과 이레의 직장 생활이 조금은 안정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서비스 시간이 늘어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아플 때도, 활동지원사가 급한 일이 생겨 집에 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활동지원사가 코로나에 감염돼도 긴 시간 공백이 생겼다. 중증장애인은 돌봄 강도가 높기에 하려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대체 돌봄인력이 바로바로 확보되지 않으니, 고스란히 제 책임으로 돌아와요. 하루에도 수백번 직장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죠. 지금 다니고 있는 것도 기적처럼 느껴져요.”
돌봄과 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는 두려움을 해소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서울시는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900명 돌봄청년 중 45%가 월 소득 100만원도 안 된다고 답했고, 셋 중 둘은 주거비 부담의 어려움(66.6%)과 돌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66.1%)을 토로했다.
이런 수치는 돌봄청년들의 소득이 낮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나에게는 돌봄청년들이 겪었을 무수한 걱정과 두려움을 곱씹게 한다. 어렵게 얻게 된 취업 기회인데도 퇴사를 생각하는 이레의 걱정은 수치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돌봄 위기는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진입하더라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게 한다.
“제가 안정적으로 일 다니고 어머니도 안전하려면 결국 방법은 하나예요. 돌봄노동자 샘들의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나아져야 해요. 지금 어머니와 같은 중증장애인을 돌보면 시간당 약 1만원 정도 받아요. 금전적인 보상이 적으니, 사명감이 있고 봉사정신이 있는 분들의 희생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이레에게 돌봄노동자는 어머니 돌봄서비스 제공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가능하게 하는 협력자다. 돌봄노동자의 노동권과 이레의 노동권은 그만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서울시는 발 빠르게 돌봄청년의 실태를 파악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보다도 훌륭했고, 모범이 될 만하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희망을 품을 수도 없다.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이라는 당연한 전제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예산을 100억원이나 삭감했다. 몇몇 시의원들은 사회서비스원이 돌봄노동자의 인건비를 과도하게 지출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회서비스원의 설립 목적은 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돌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이었다. 2019년 시범사업을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돌봄노동자를 시급제가 아닌 안정적인 정규직 월급제로 채용한 곳은 서울시가 유일했다. 이제까지 값싼 취급을 받던 돌봄노동에 제대로 임금을 주기 시작한 것인데, 효율성을 빌미로 예산이 삭감됐다. 하지만 돌봄노동이 불안정해지면 시민의 삶이 연쇄적으로 불안정해진다. 효율성을 말하는 이들도 결국 돌봄을 받는다. 이 진실을 직면하고 명심하길 바란다. 효율성보다 돌봄의 가치가 우선해야 하는 이유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