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동편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의 주최로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권고 위반 오세훈 서울시장 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기현 | 작가
한낮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청년 남성이 차고지에 세워진 버스에 올라타려고 했다. 버스기사는 이를 제지했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몸이 뒤섞였다. 버스기사는 남성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였고 손가락이 긁혔다. 버스에는 흠이 났고 초소 유리창엔 금이 갔다. 112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어떻게 된 거냐는 경찰관의 물음에 청년 남성은 횡설수설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자신의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죄목은 ‘특수재물손괴’였다.
‘현행범인체포 통지서’에는 범죄 내용과 체포 이유가 건조하게 적혀 있다. 이 사실들 앞에서 우리 중 몇이나 이 남성이 발달장애인이라는 걸 알 수 있을까? 말하자면 발달장애인이 통제에 불만을 표현한 ‘도전적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남성은 집과 작업장을 오가는 이동지원을 받았지만, 활동지원사의 사정으로 혼자 출퇴근한 하루 사이에 사달이 났다.
통지서를 받아든 어머니는 마음이 분주해졌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경찰 연락을 받은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형을 사는 건 아닌지, 모든 게 막막했다. 피해자를 만나서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개인정보보호 정책으로 인해 연락할 수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가정이기에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도 마땅치 않았다. 여기저기 문의해봤지만, 형사절차상 차별이나 권리침해 문제에 한해서만 지원한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경찰서나 법원에 동행하는 서비스가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지원이었다.
서른을 넘긴 아들의 자립을 고민하던 어머니는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아들의 자립이 더욱 어려운 과제처럼 다가왔다. 만약 내가 없을 때 또다시 가해자가 된다면? 끝까지 변호해줄 단 한 사람도 없다면? 이번 일을 잘 해결하더라도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또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을까?
2020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자료를 보면, 전국 발달장애인지원센터 17곳 중 상근하는 법률지원 변호사는 단 한명뿐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가해자가 된 뒤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법률 상담을 받는 사례는 2018년부터 연평균 400건이 넘는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지만 큰 변화가 없다. 어머니가 공공에서 법률지원을 받지 못하고 혼자 동분서주해야 했던 이유다. 언제까지고 그 공백을 혼자서만 메꿀 수 없는 노릇이다.
“아들이 자기 집에서 작업장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상을 살면 좋겠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들 때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신경써주면 충분해. 주말이면 나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말이야. 도전적 행동은 친근한 사람 곁에 없을 때 낯선 상황에 노출되면 나오거든. 그런 상황들을 고려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어.”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나에게 지금 겪는 사건을 말해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상이었다. 자신이 없는 아들의 일상 공간이 시설이나 교도소가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아들’로 서로의 삶에 종속되고 싶지 않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개인’으로 각자의 욕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웃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각자의 자립을 지지하며, 무엇보다 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다. 혈연이나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웃이자 동료 시민으로 꼭 함께하고픈 일이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으로 벌어진 사건 앞에서 시설에 격리해야 한다는 ‘통념’이나 엄마가 더 신경쓰고 관리해야 한다는 ‘눈총’이 아닌, 다른 세상을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