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외교’ 반대 여론에 대통령실이 지난 12일 유튜브에 공개한 “미래 위한 결단” 쇼츠 영상 갈무리.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과 17일 실무 방문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상대국을 1년에 한번씩 방문하는 형식으로 시작됐다.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임기 말 추락하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교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회고록에서 “취임 전부터 임기 중 독도를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한-일 관계는 우리 대통령에게 늘 어려운 문제였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 때문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다. 우리만 잘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가능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부치 총리 덕분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 한-일 관계가 악화한 원인을 “중국의 부상 앞에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편승한 일본의 우경화는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리가 있다.
둘째, 국민감정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과 정서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는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다.
그러나 지난 3월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에 대해서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평가하는 국민이 더 많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수 국민이 반대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안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쇼츠(짧은 동영상)를 두개나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두개의 걸림돌이 있다.
첫째, 야당의 강한 반대로 인한 여론 악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번 합의를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대일 굴욕외교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했다.
둘째, 일본의 호응 여부가 불투명하다. 기시다 총리는 혐한 정서가 강한 극우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알맹이 없는 환대로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극우파는 “4년 뒤 한국 대선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합의가 또 깨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일이 꼬인 것은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선의로 이번 일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 대통령의 선의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성과를 내려면 4년 뒤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나라 대일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이 어느 정도 믿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번 합의를 지킬 것이라는 정치적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승계하겠다고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쉽게 만들어진 합의가 아니다. 김대중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성취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나는 다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교하게’ 노력했음을 밝힌다.”
“나의 일본 방문이 나름의 성과를 올린 것은 우리의 민주적인 정권 교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국민을 설득하고, 언론을 설득하고, 여·야 정당을 설득한 것은 수평적 정권 교체의 위력이었다.”
‘정교하게’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인 것이 이채롭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 분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 김대중 대통령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정교하게’ 노력했다. 언론을 설득하고 야당을 설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뭘 했나?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언론과 야당을 간곡히 설득하기 바란다.
한-일 관계 개선은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