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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파타고니아 정도는 해야

등록 2022-10-16 17:37수정 2022-10-17 02:36

파타고니아 누리집 갈무리
파타고니아 누리집 갈무리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이제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입추가 한참 지난 이후에도 거의 여름과 다름없는 나날이 계속되지 않았던가? 실제 지난 9월은 역대급 고온 현상을 보였다. 북반구의 세계 평균기온은 사상 다섯번째로 높았고, 남반구의 9월은 아예 사상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찬 바람이 부는 순간 우리는 방금 전의 더위도 모두 깡그리 잊는다. 더위와 함께 기상이변도 잊고, 그와 함께 기후위기도 잊는다.

아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작정한 듯하다. 자연스러운 망각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머릿속에서 몰아내려는 모양새다. 그만큼 얘기했으면 됐지 무슨 더 할 말이 있냐는 듯이 말이다. 사실 더 이상의 말이 불필요한 건 맞다. 행동과 실천 말고 필요한 건 없으니까. 그런데 여전히 변화가 안 일어난다면? 말이라도 계속해서 해야 한다. 특히 ‘에라 모르겠다!’ 정신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는 지금 더욱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할 말과 대화와 소식이 필요하다.

가령 고온의 지난 9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소식 같은 건 일부러라도 다시 언급해야 마땅하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 일가가 가족 소유의 회사 지분을 모두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에 기부하기로 한 결정 말이다. 그는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 라며 4조원 규모의 회사를 통째로 환경단체와 비영리재단에 기부했다. 쉬나드 회장은 ‘자본주의를 완전히 뒤집어서 생각한다’ 며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 회사가 걸어온 발자취를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은 “역시 파타고니아다!” 라고 반응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논평처럼, 쉬나드 회장의 이번 결정에 대한 국제적인 환영과 반색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불만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인으로서는 어떤가? 아예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이런 행보에 조금이라도 견줄 만한 기업이나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언급할 만한 뭔가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없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저런 곳이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새로운 척도가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총수조차 이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제부턴 ‘파타고니아 정도는 해야’ 라는 게 새로운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소식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거의 없다.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 대신 이러한 파격 기부가 왜 한국에선 나올 수 없는지 그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고 분석한 기사만 눈에 띈다.

어떻게 이토록 논점 파악을 못하는 것인가? 쉬나드 회장이 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방식의 기부만이 기업이 자연환경에 기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이미 이전에도 수많은 친환경적인 행보를 해왔다. 방식이 어떻든 이 정도의 결연한 의지와 파격적인 규모로 단행했다는 점, 그리고 지구만이 주주라는 사상이 많은 사람에게 와닿고 또 주목받고 있다. 원래 마음이 부족할수록 장비나 제도 탓을 함으로써 실천을 ‘못하는’ 핑계를 찾는 법이다. 국내에 만연한 기만적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과 뻔뻔스러운 그린워싱의 관행이 사라질 때까지 파타고니아 사례는 계속해서 회자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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