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극점과 8000m대 봉우리는 숱한 생명을 삼킨 모험과 과시적 국가주의의 대상이었다. 1964년 중국 시샤팡마(8027m)를 끝으로 8000m 14좌 모두에 사람 발길이 닿고,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무산소 첫 14좌 완등을 이뤄내며 등반의 세계에 새 장이 열렸다. 얼마나 어려운 길을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올랐는지가 전문등반의 잣대가 됐다.
‘최초 등정’ 고지가 사라지자 성찰이 깊어졌다. 미국 등반가 이본 쉬나드는 자신이 쓸 암벽등반 도구를 직접 만들어가며 요세미티 엘캐피탄,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등에 새 루트를 개척한 ‘대장장이 등반가’다. 그는 등반장비 회사 쉬나드(블랙다이아몬드의 전신)를 창업해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등반용 쇠못인 피톤을 바위에 박고 빼는 과정에서 암벽을 훼손하는 것을 보고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피톤을 포기하고 대신 바위 사이에 끼워넣어 사용하는 알루미늄 초크를 개발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의류는 살충제와 화학약품 없는 유기농 면을 사용하는 등 친환경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쉬나드는 최근 자신과 가족 3명이 지분 100%를 소유한 파타고니아의 주식 전체(30억달러 가치)를 비영리재단과 신탁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재단은 매년 발생하는 파타고니아의 이익 1억달러(약 1400억원)를 포함해 배당금 전체를 지구환경 보호와 생물다양성 보전 등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 쉬나드는 기부에 따른 감세 혜택도 거부하고 200억원 넘는 세금도 부담해, 기부문화에도 충격을 안겼다. 쉬나드는 최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결되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만드는 데 파타고니아 지배구조 개편이 도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암벽등반의 성지 북한산 인수봉에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2년간 근무하던 쉬나드가 선우중옥씨와 개척한 쉬나드(취나드)A, B 루트가 바위꾼들을 부른다. 가보지 않은 바윗길을 개척해온 등반가 기업인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향한 새 길을 낸 셈이다. 새로 개척한 ‘쉬나드 루트’가 “길이란 본디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다님으로써 생겨난 것”이라는 루쉰 말대로 될지는, 파타고니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반응에 달렸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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