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도, 또는 동아시아에서도 수십년간 봉인돼온 핵무기가 사용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나의 나쁜 예감은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고하고 있다.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핵무기가 사용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디 이 예감이 빗나가기를.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여름이 갑작스레 끝나고 가을이 왔다. 예년 같지 않은 썰렁한 가을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들이 이어져 하루하루 미루고 있던 중에 칼럼 마감이 눈앞에 다가왔다. 무엇을 써야 할까. 쓰고 싶은 것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진 탓인지 좀체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더는 쓰고 싶지 않았다. 올해 2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나는
‘이상 없는 시대에 온전한 정신으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거기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지만, 그 뒤에도 이 난의 칼럼을 쓸 때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전쟁으로 나 자신이 계속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70여년의 인생을 통해 보아온 세계가 이제 확실히 크게 바뀌려 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더 나쁜 쪽으로.
종래의 관점을 크게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것, 예감하고 있던 것이 차례차례 현실화하고 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비관적인 상상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어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안쪽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처럼 비관적인 말을 하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서 나의 나쁜 예감이 빗나가기를 어렴풋이 바라는 게 있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굳이 나쁜 예감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개월을 뒤돌아보면, 내 예감은 차례차례 현실이 됐다. 현실이 내 비관적 예감을 앞질러 가버릴 때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장기화되고, 엄청난 희생자, 파괴, 난민을 양산하면서 끝날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지역의 내전 상태를 훨씬 넘어서 준세계대전이라고나 해야 할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국제질서를 그럭저럭 떠받쳐온 유엔은 완전히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 합병을 선언하고, 핵무기 사용까지 현실감을 띠게 됐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력은 소련 붕괴 이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세력권 확대를 꾀해왔다. 소련 붕괴 때의 국제적인 약속에 반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방 확대 전략이 러시아에 현실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서방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그러나 나이브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푸틴이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4개 주의 ‘러시아 통합’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의 평등을 거쳐 불가피한 통합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내건 소련 사회주의의 이상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면, 바꿔 말해서 거기에서 서방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능가하는 평화, 인권,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류 보편의 이상의 횃불을 계속 밝혔다면, 세계인들 다수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상황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레닌이 주장했듯이, “대러시아인의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사회주의 소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었다.
그 ‘이상’은 배반당하고 버림받았다. 물론 소련 시대의 ‘이상’도 한 꺼풀 벗기면 스탈린 체제의 철권통치에 의해 유지됐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철권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희구했던 대중의 그 희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자유를 희구하는 대중의 에너지로 일어선 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결과가 곧바로 서방의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마구 찬탈당한 것도 현실이다. 그리고 스탈린의 철권통치 대신에 비밀경찰 케이지비(KGB) 출신인 푸틴이 철권을 휘두르고 있다. 결국 ‘이상’이 사라지고 철권통치가 살아남았다. 푸틴의 주장은 ‘대러시아인의 민족주의’ 바로 그것이다. 전선에는 극동지방의 소수민족 병사들이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상’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인가?
유럽에서도, 또는 동아시아에서도 수십년간 봉인돼온 핵무기가 사용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나의 나쁜 예감은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고하고 있다.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핵무기가 사용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디 이 예감이 빗나가기를.
우리에게 부과된 급무는 잃어버린 ‘이상’을 재건하는 일이다. 다만 이제까지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 속에서 험난한 투쟁을 거친 새로운 ‘이상’을.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갈 길이 멀다.
시니시즘(냉소주의)이 개가를 올리며, ‘죽음의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은 (지금 여기) 일본만의 현상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우크라이나도 미얀마도 모두 급속하게 ‘진부화’(陳腐化)돼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부화’의 폭력에 계속 저항하는 것밖에 없다고 썼다. 거기에 대해 “진부화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마음을 분노나 비애에 맡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경식도 결국 프리모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반응한 사람도 있다.
레비의 고향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선거에서 극우파가 약진했다. 다른 유럽 각지에서도, 트럼프 지지자가 횡행하는 미국에서도 사정은 어슷비슷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지옥에서 생환해 평화를 위한 증언자로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다가 결국 자살한 자의 존재는 조금도 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엄숙이나 경건, 겸허라는 감정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분노나 비애에 사로잡힌 자의 ‘자기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래서는 레비가 자살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야.” 레비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자살로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레비의 증언이 인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인류’는 이렇게 해서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경식도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친절한 충고일까. 나 스스로, 나 역시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레비처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는 말을 남기고 싶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거 없는 분노나 비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의 현실이 끊임없이 분노와 비애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비와 같은 길을 가지 마라”라고 하려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런 현실의 금방이라도 빠져나갈 것 같은 밑바닥을 조금이라도 떠받치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 그러나 냉소주의자들에게는 이런 말도 가닿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