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었던 영화를 한편 소개하겠다. <미얀마 다이어리>다. 익명의 영화인 그룹이 만든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현주소를 전하는 작품이다.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잘 전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어제 모습이며, 또 아차 하면 다시 찾아올 내일의 모습이기도 하다. “프스타바치” 호령이 또다시 울려 퍼지려 하고 있다.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기분 좋게 맑은 하늘이 펼쳐진 오후, 인천항이 잘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환한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데(5월19~23일), 매년 이 계절에는 인천을 찾아 며칠 머무는 것이 상례가 됐다. 올해는 건강상 문제로 일본을 떠나기 직전까지 많이 망설였으나, 영화제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원기를 좀 회복했다.
‘디아스포라’에 특화된 영화제인 만큼 사회적 논란의 주제가 될 소박하고 어려운 주제를 추구하는 작품이 많았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 다수가 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다. 놀랄 일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그런 영화제임에도 일반시민 관객들이 많이 참가하며, 그 수도 매년 늘고 있다. 내게는 이것이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돈과 효율로 환산되고 평가되는 시대에 디아스포라라는 ‘주변화’된 존재, 말하자면 “돈 안 되는 존재”를 다루는 영화제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만큼 귀중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서는 평소 상영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한 ‘작은 작품’, ‘이름 없는 작품’도 일반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대학축제를 스스로 꾸리듯 활달하게 활동하는 젊은 운영진들 모습은 눈부실 정도다. 최근 일본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많은 문화적 기획에 행정이 과잉 개입하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어느샌가 위축돼 자기검열과 같은 자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들릴진 모르겠으나, 매년 5월 인천을 찾아가면 거기에서 살아남은 ‘유토피아’의 단편과 재회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대, 남북분단의 전선이고 동시에 중국, 러시아, 일본에 에워싸인 조그만 틈새 같은 작은 공간에,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한 유토피아가 남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유토피아를 오래도록 살아남게 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나는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를 추천하고, 상영에 이어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70년 개봉한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류드밀라 사벨리예바 등이 출연한 영화다. 가벼운 플레이보이 역이 잘 어울리는 마스트로이안니가 비극에 휘말리는 병사 역을,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소피아 로렌이 그 연인 역을 맡았으며, 소련 영화 <전쟁과 평화>로 관객을 매료시킨 소련 대표 여배우 사벨리예바가 소박한 우크라이나 농가 여인을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영화가 기획 제작된 1960년대 말은 동서대립이 격심했던 시대여서, 서방 쪽 촬영팀이 소련에서 촬영 제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스토리지만 거기에는 동서 ‘해빙’과 세계평화에의 절실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여년, 개봉한 지 반세기가 지나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감독은 네오레알리스모(이탈리아 신사실주의)의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다. 일본에서 자란 내 세대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어서, 영화제에 추천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으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과거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고, 우크라이나라는 땅은 우리에게 만주나 조선반도(한반도)에 비유할 수 있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 등을 생각해보자며 추천했다.
추천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 영화가 박정희 군사정부 시대에 만들어져 개봉이 일본에서보다 상당히 뒤늦었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스탈린 사후 소련 ‘해빙’ 시대에 처음으로 소련 국내에서 촬영된 서방 영화다. 영화 속 아마도 키이우(키예프) 같은 도시의 영상, 도시를 오가는 소련 주민들 모습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영화는 여러번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재회하지만 이미 너무 긴 세월이 흘러 본래대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헤어지는 부부의 비극이 잘 그려져 있다. 이런 비극은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조선반도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벌어졌고, 그 상처는 지금도 욱신거리고 있다. 무엇보다 데시카 감독다운 것은 동시대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애절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해바라기>에 이어서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휴전>을 영화로 만든 <머나먼 귀향>에 관해 얘기했다. 가까스로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레비가 8개월에 걸친 고난 끝에 고향 이탈리아 토리노 생가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 또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자신의 집에 돌아온 뒤에도 “공포에 찬 꿈”으로 계속 고통을 받는다. “나는 가족이나 벗과 식탁에 앉아 있거나, 일하거나, 푸른 들판에 있다. (…) 하지만 나는 깊숙한 곳에서 희미하지만 불안을 느끼고 있다. 밀려오는 위협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 나는 다시 라게르(수용소)에 있고, 라게르 외에는 아무것도 진실하지 않다. 그것 이외의 것은 짧은 휴가, 착각, 꿈일 뿐이다.” 그 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아침 들려오던 점호 소리 “프스타바치”(폴란드어로 ‘기상’) 때문에 깼다.
이 서사시는 우리가 ‘종전’이라거나 ‘평화’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잠깐의 ‘휴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지금 “프스타바치” 호령에 겁을 먹으면서 끝나지 않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조선(한국)전쟁은 지금도 ‘휴전 중’이다. 레비는 그 뒤 40여년을 ‘평화를 위한 예언자’로 살았으나 1987년에 자택에서 자살했다.
올해 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를 한 편 소개하겠다. <미얀마 다이어리>다. 미얀마영화집단(The Myanmar Film Collective)이라는 익명의 영화인 그룹이 만든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현주소를 전하는 작품이다.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잘 전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어제 모습이며, 또 아차 하면 다시 찾아올 내일의 모습이기도 하다. “프스타바치” 호령이 또다시 울려 퍼지려 하고 있다. 상영 뒤 토크 행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이 영화 관계자들은 예전 한국 민주화 투쟁의 눈물투성이의 나날, 그리고 그 눈부신 광휘를 내게 상기시켰다. 젊은 세대 관객들은 어떻게 봤을까. 전쟁은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고 민중의 고통에도 끝이 없다. 따라서 투쟁에도 끝이 없다는 사실을 나도 다시 한번 통감했다.
번역 한승동(독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