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내 머리에 반복적으로 떠오른 것이 프리모 레비의 <휴전>이다.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1947)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고, 전후 세계 평화를 위한 증언자이자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학자다. 그는 1944년 2월~1945년 1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 수용돼 있다가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되면서 그도 해방됐다.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러시아군 침공 1년이 넘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내 뇌리에는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는 말이 계속 깜빡거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끝날까. 끝난다는 건 어떤 상태를 가리킬까. 애매한 상태에서 살육과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푸틴과 벨라루스의 루카셴코가 회담하고 벨라루스 영내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했다.
불과 2~3년 전 시민들로부터 부정선거 의혹을 추궁당해 자리가 위태롭던 루카셴코 대통령은 강경하게 시민을 탄압하고 푸틴에게 접근해 자리를 지켰다. 그때 투옥되거나 국외 추방을 당한 시민들(예컨대 노벨상 수상작가 알렉시예비치 등)은 지금 얼마나 처참한 심경일까.
냉전 시대 벨라루스 수십 곳에 핵 기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전세계적인 반동의 시대다. 전투는 눈사태처럼 핵전쟁으로 비화할지 모른다. 유엔 안보리 등으로 대표되는 2차 세계대전 뒤 구축된 세계질서가 기능 부전에 빠져 있는데, 이 추세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핵 위기, 대만 위기 등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지 모른다.
나는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립해서 평화를 누리고 있어야 할 조국에서는 이미 내전(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전쟁은 심대한 희생을 치르고 1953년 휴전이 됐으나,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밥 딜런의 반전 노래 가사는 아니지만, 도대체 얼마나 파괴돼야 ‘끝나는’ 것인가? 얼마나 죽이면 ‘끝나는’ 걸까? 내가 살아온 70여년 인생에서 세계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다. 전쟁의 검은 그림자는 늘 울적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가 최근 날로 짙어지고 있다. ‘평화의 소망’ ‘평화의 기도’ 등도 현실 앞에서는 무력한 제목에 지나지 않는가.
그럴 때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내 머리에 반복적으로 떠오른 것이 프리모 레비의 <휴전>이다. 레비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이것이 인간인가>(1947)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고, 전후 세계 평화를 위한 증언자이자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학자다. 그는 1944년 2월~1945년 1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돼 있다가,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되면서 그도 해방됐다.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이송됐던 이탈리아계 유대인 650명 가운데 그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휴전>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해방(그야말로 알몸으로 광야에 내던져진 듯한 ‘해방’이었지만)된 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러시아 서부 각지를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며 8개월 뒤 고향 이탈리아에 생환하기까지의 고난의 여로를 얘기한 명저다.
‘20세기의 서사시’라고 할 그 작품의 주요 무대에서 지금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소련 전쟁’의 주요 전장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하나로 이어진 끝나지 않는 전쟁’의 서사시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고난에서 해방되는 환희를 노래한 게 아니다. 고통스러운 경고로 가득 찬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이야기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레비는 마찬가지로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그리스계 유대인 모르드 나훔과 방랑의 여행을 동행하게 된다. 간특한 꾀(狡智·교지)가 넘치는 ‘그리스인’ 상인은 레비에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냉엄한 선생이 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다.
아우슈비츠의 죄수복밖에 없었고 신고 있던 신발이 금방 망가진 레비에게 ‘그리스인’은 “너는 바보야”라고 했다. “신발이 없는 놈은 바보다. 신발이 있으면 음식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지만 신발이 없으면 그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론은 불가능했다. 그 논지가 옳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이 ‘그리스인’의 교지와 대담성 덕에 아우슈비츠에서 방금 나온 레비는 혼돈 속을 조금씩 걸어나갈 수 있었다. 그 ‘그리스인’은 “전쟁은 끝났다”는 레비에게 “언제나 전쟁이야”라는 ‘기억해야 할 답’을 내뱉었다. “우리는 라게르(lager·강제수용소)를 경험했다.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이나 인류 역사의 기괴한 왜곡, 역겨운 예외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슬픈 확인이었을 뿐이다. ‘언제나 전쟁이야’, 인간은 타인에 대해서는 늑대다.”
“언제나 전쟁이야” 이 긴 서사시의 앞부분에 나오는 삽화가 이 책 전체의 주제다. 그 말투는 때때로 근사한 유머로 차 있기도 했다. 특히 이탈리아인 사기꾼으로 레비의 친구인 체사레에 관해 얘기하는 대목 등이 그랬다. 레비의 기억은 정치하고 그 묘사는 생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서사시는 전승의 환희로 끝나진 않는다. 불길한 심연에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예언과 함께 끝난다.
기나긴 고난 끝에 1945년 10월19일, 레비는 고향 마을 토리노로 귀환했다. 무사했던 가족과도 재회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공포로 가득 찬 꿈’을 계속 꿨다. “나는 가족이나 벗들과 식탁에 앉아 있거나, 일하거나 푸른 들판에 있다. (…) 하지만 나는 깊은 곳에서 희미하지만 불안을 느끼고 있다. 다가오는 위협을 분명히 감지하고 있다. (…) 나는 다시 라게르에 있고, 라게르 외에는 진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외의 것들은 짧은 휴가, 착각, 꿈일 뿐이다.” 그 꿈은 아우슈비츠에서 매일 아침 들려오던 점호 소리 “후스타바치”(폴란드어로 ‘기상!’) 때문에 깼다.
이 서사시는 우리가 ‘종전’이나 ‘평화’로 부르는(또는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은 잠깐의 ‘휴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 ‘휴전’조차 위협받고 있다. 1963년 출간한 두번째 작품 <휴전> 뒤에도 평화의 가능성을 깊이 고찰하는 작품들을 남긴 레비는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면서 그의 작품 <휴전>이 설파한 냉엄하고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덧붙임. <휴전>은 2010년 한국에서도 출간됐고(돌베개), 1996년 프란체스코 로시 감독에 의해 <머나먼 귀향>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5월 열리는 제11회 인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우크라이나를 주요 무대로 한 이탈리아 전쟁영화 <해바라기>(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를 상영하는데, 서경식이 강연하면서 <머나먼 귀향>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