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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건희·한동훈·대통령실, 답변하지 않는 권력 / 박용현

등록 2022-08-28 18:05수정 2022-08-29 08:35

[아침햇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용현 | 논설위원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당한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김 여사의 침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영어 리스폰서빌리티(responsibility)는 우리가 ‘책임’으로 번역을 했지만 ‘응답한다’는 뜻이다. (중략) 책임의 기본은 누군가의 물음에 대해 대답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거기에 맞는 올바른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이나 내가 표절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도 김 여사는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식의 무시 전략을 펴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 점이야말로 논문의 표절 판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근본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 국민이 그 권력을 집권세력에게 위임하되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책임을 묻는 수단은 선거나 탄핵 등 직접적인 것도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바로 ‘묻고 답하기’다. 영어권에서 정치적 책임을 뜻하는 또다른 단어인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 역시 ‘설명할 의무와 그에 따른 보상·처벌’의 의미를 내포한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대표적인 게 국회에서 이뤄지는 질의·답변이다. 이는 우리 헌법도 명시하고 있다(62조 2항 ‘국회나 그 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출석·답변하여야 한다’). 여기에 더해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거나 여론조사로 의견을 청취하거나 정보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는 식으로 ‘묻고 답하기’의 수단과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현안 대처에서는 ‘답변하지 않음’이 답답하게 일상화하고 있다. 김 여사 표절 문제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미국 출장비 공개를 거부했다. 현지에 머문 기간은 7일이었는데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 3일이 끼어 있었고, 평일 중에도 하루는 공식 일정이 없었다. 출장계획서와 달리 미국 법무부 장관은 만나지도 못했다. 검찰총장도 공석 상태인 임기 초기에 이런 출장이 긴급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법무부로 가져온 인사검증 기능과 관련해 미국에서 이 업무를 맡는 연방수사국(FBI)과 논의한다는 게 한 명분이었는데, 그렇다면 왜 인사정보관리단장은 동행하지 않았는지도 의아하다. 이밖에도 숱한 의문을 낳는 이번 출장의 경비 공개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공개 일정이 없던 4일 동안 무슨 극비 임무라도 수행했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답변, 아니 ‘답변 없음’이다.

한 장관은 국회에서도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22일 국회에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행령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늘리는 꼼수를 비판하며 “대통령조차도 (거부권 외에는) 국회 입법권을 침해할 수 없다. 장관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설 수 있느냐. 아주 심플한 질문이다”라고 묻자 한 장관은 “너무 심플해서 질문 같지가 않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국회 답변을 통한 책임정치를 규정한 헌법을 거스르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어떤가. 대통령 부정평가 항목 1위인 인사 문제를 비롯해 관저공사 수의계약 논란, 건진법사 청탁 개입 의혹, 김 여사 팬클럽 보안 사고 등 국민들이 지적하고 궁금해하는 사안이 넘치는데도 답변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내놓지 않는다. 23일 국회에서 김대기 비서실장은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우리 여사가 뭘 잘못했는지 먼저 좀 말씀을 해달라”고 했다. 몸은 국회에 출석해 답변했으되 실제로는 답변하지 않은 것이나 매한가지다. 윤 대통령 자신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랬듯 국민이 답을 듣고 싶어하는 질문은 귓등으로 듣고 만다.

대신 매우 기괴한 방식의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주가조작 사건에 김 여사가 연루된 의혹이나 윤 대통령 장모의 통장 잔고 증명서 위조 사건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진솔한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체하며 대통령 취임식에 이들 사건 관련자를 대거 초청한 행태가 그것이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오기가 느껴진다.

정권을 잡은 집단이 국민의 질문과 요구를 하찮게 여긴다면 민주주의는 부정된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민주적 선거를 통해 5년간의 독재를 선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불길한 징후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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