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 작가
요즘 인천을 자주 드나든다. 인천에서 진행하는 한 자조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자조모임에서 나온 경험들을 구술로 기록하는 게 내 역할이다. 구성원 모두 중장년층으로 치매가 있는 부모, 배우자, 자녀 등을 돌보고 있거나 과거에 돌보았다.
대부분 치매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혼자서 끙끙 앓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모임에 참여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충분히 설명해내지 못해도 어떤 고통인지 알아채는 듯한 분위기에서, 당장에 겪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요령을 배우는 대화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힌트가 돼주는 서로의 생애에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던 위안을 얻었다.
7년이나 이어온 지지대 같은 모임이었다. 그만큼 경험과 성찰이 쌓였고, 이제 더 많은 이들과 이 경험을 나누려고 한다. 한 노년 남성 참여자는 아내에게 치매가 시작됐을 때 느꼈던 고통과 어려움을 몇페이지에 걸쳐 수기로 적어 왔다. 초로기 치매 남편을 돌보는 한 중년 여성 참여자는 치매 당사자가 꿈을 꾸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다짐을 내비쳤다.
이런 마음들이 막 돌봄을 시작한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치매를 숨기게 만드는 세상의 편견에도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사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돌봄 경험이 공적인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2주에 한번씩 모여 기록을 위해 대담을 나누는 가장 큰 동기다.
그렇게 인천을 드나들다 보니, 인천에서 벌어지는 돌봄과 복지에 관한 새로운 움직임들이 눈에 띈다. 우선 지난 4일에 인천사회서비스원에서 진행한 한 포럼이 흥미를 돋웠다. 2020년 10월에 발표된 ‘인천 복지기준선’이 주제인 포럼이다. 인천 복지기준선은 말 그대로 인천의 복지가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기준선이다. 소득, 건강, 주거, 교육, 돌봄영역 118개 과제를 제시한다.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기준선이 상정한 서비스영역이 다양한 권리를 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고, 기존 복지제도에 기준만 설정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요한 건 이 기준선이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기준선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만든 이후에도 행정이 이를 잘 이행하는지 시민평가단이 ‘평가’한다.
이전까지 복지행정과 시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심사받고 선별되는 관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천 복지기준선의 시민평가단은 반대로 복지행정을 지속해서 평가할 수 있다.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결정에 시민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변화가 앞으로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어떤 권리들을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위기에 강한 인천, 외로움 없는 돌봄혁명 시대” 이번 지방선거에 나온 이정미 정의당 인천시장 후보의 출마선언문 제목 중 일부다. 이정미 후보는 지난 정의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돌봄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정치의 주변부 신세였던 ‘돌봄’을 정치의 중심부로 옮기려는 의지가 보인다.
그의 공약은 돌봄이 국가 책임일 뿐 아니라, 지역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복지재정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완전히 이양하고, 지자체별 통합돌봄본부를 만들겠다고 한다. 시민들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여기저기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돌보는 다양한 활동에 소득을 보장하자는 제안도 한다.
돌봄을 ‘서비스’로만 국한할 수 없다. 돌봄은 우리가 모두 취약할 수 있다는 전제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진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그렇기에 시민도, 행정도, 정치도 돌봄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인천이 흥미롭다. 돌봄 도시의 역동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