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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연애와 가족 돌봄 사이에서

등록 2022-02-13 18:24수정 2022-02-14 02:01

조기현 | 작가

“연인에게 아버지가 치매라고 어떻게 얘기했어요?” 간혹, 그러나 끊이지 않고 받는 질문이다. 나는 숨길 겨를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알렸다고 간단하게 답한다. 그렇게 건조한 사실만 말하고 나면 마음이 께름칙하다. 질문하는 사람이 듣고 싶은 건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는 걸 연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 방법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어떻게’를 제대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연인에게 어떻게 말할지는 청년기에 아픈 가족을 돌보았던 이들에게도 큰 고민거리였다. 청년기에 아픈 가족을 돌본 경험을 나눌 때, 연애가 주제가 되면 닮아 있는 일화들이 줄을 잇는다. 연애 초기에 데이트할 때 아픈 할머니에게 일이 터져서 급히 헤어지면서도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일, 부모님이 아프다는 사실을 연인에게 알렸지만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던 일, 결혼을 약속하고 상견례에 조현병이 있는 어머니와 함께 갈지 말지 고민한 일 등, 이제까지 ‘가족 형편’으로만 여기고 혼자서 짊어졌던 상황들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는 것도 말하기 쉽지 않은데, 자신이 돌봄의 주체라는 사실까지 알리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아픔과 돌봄이 마치 우리를 연인이나 결혼 상대로 가치 없게 만드는 것 같고, 연인에게 혹은 연인의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크다. 너무나도 사적이라고 여겨왔던 경험을 서로 맞대어보니, 이행기에 가족을 돌본다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고민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이지만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이기에 ‘가족 형편’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나에게 질문했던 이들에게 내가 다시 질문하고 싶었다. 한번은 인터뷰를 하다가 기자님께 같은 질문을 받았다. 이때다 싶어서 왜 그런 질문을 구성했는지 되물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가족의 아픔을 연인에게 ‘어떻게’ 말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점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부터 뇌전증으로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일을 하지 못했고 약에 취해 멍하니 있는 날이 많았다.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의식하며 지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약속한 이를 만났다. 최악의 상상이 앞섰다. 연인이 아버지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이었다. 미리 아버지의 상태를 알렸을 때 연인은 태연하게 알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연인이 실제로 보면 당황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상견례 날, 제발 아버지가 발작만 일으키지 말기를 바랐지만, 우려한 일은 현실이 돼버렸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그보다 먼저 아버지를 챙겼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연인이었다. 자기 자신이 두려움을 만들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는 건 아니다. 가족 돌봄으로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고, 결혼이 파혼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아픔과 돌봄을 터부시하면 스스로 마음의 짐을 더 짊어지게 된다. 결국 짐을 내려놓는 건 나의 몫이다. 곁에서 함께할 연인을 한번쯤은 용기 내서 믿어보면 좋겠다. 마음의 짐을 함께 내리고 풀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이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는 더 힘이 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연인과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한다면 다시 그 관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게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럴 사람이면 빨리 말하는 게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 먼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경험을 소화하지 못했는지 되돌아보면 어떨까? 그게 연인을 신뢰하게 할 뿐 아니라, 질병과 돌봄을 터부시하는 사회에 내딛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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