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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반려하는 삶

등록 2021-08-15 16:39수정 2021-08-16 07:39

조기현 ㅣ 작가 

지난해 여름이었다. 초저녁, 나는 반려견 ‘공자’와 골목길을 산책했다. ‘공자’는 쓰레기 더미 앞에 놓인 종이박스 앞에 멈춰 섰다. 한참 냄새를 맡더니 이내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스가 요동쳤다. 딱지 접듯 접힌 박스의 윗면 사이로 머리가 쏙 튀어나왔다. 이제 막 새끼 티를 벗은 하얀 진돗개였다. 유기된 것이었다.

그 광경에 골목길을 오가던 대여섯 사람이 금세 모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유기한 사람을 욕했다. 동물에게 몹쓸 짓 하면 큰 벌 받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누군가는 신고 방법을 찾고, 누군가는 주변 시시티브이를 뒤져보자고 제안했다. 그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쭈뼛거리던 중년의 남성이 갑자기 종이박스를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고향에서 줬는데, 예쁜 애인데, 왜 아무도 안 가져가나.”

강아지는 남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언제 또다시 유기될지는 알 수 없었다. 종이박스를 안고 집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은 고민에 짓눌린 듯 보였다. 나도 뉴스에서만 봤던 유기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니 왜 유기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서 데려왔지만, 막상 키우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그의 뒷모습에 몇년 전 내가 어른거렸다.

한때 나는 ‘공자’의 양육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아픈 아버지를 나 혼자 돌볼 수 없겠다고 뼈저리게 느끼던 때였다. 아버지에게 벌어진 사고를 처리하느라 몸도 정신도 돈도 남아나질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갔고, 늘 아버지 곁에 있던 ‘공자’가 내게 남았다.

심란했다. 당장에 일을 나갈 때마다 집에서 짖는 통에 집주인은 집을 빼든지 강아지를 없애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사를 가려고 하면 반려동물은 절대 안 된다는 집이 대다수였다.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 한번 진료받을 때 몇만원, 수술 한번 받으면 100만원이 웃도는 돈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공자’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공자’의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내 삶의 여러 선택지가 제한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공자’를 짐처럼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게 그저 이 작은 생명 하나가 없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양육 포기를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공자’와 잘 살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유실되거나 유기되는 반려동물 수가 늘어난다. 집에 찾아오지 못하게 먼 곳에 유기하는 경우도 있고, 동물위탁관리업소에 맡겨두고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20년 한 해 유실되거나 유기돼서 구조된 동물의 수는 13만401마리다. 재작년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동물등록제와 중성화 의무화, 무분별한 번식 금지, 반려인 교육 강화 등이 제시된다.

나에게 이 문제는 ‘반려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반려인의 진학, 취업, 이사, 결혼, 출산 등의 삶의 변화가 반려동물 유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과 반려동물의 돌봄이 대립할 때, 해소하는 방법이 유기인 셈이다. 삶과 돌봄을 조율하기 힘들다는 점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과 사람을 돌보고 돌봄받는 삶의 닮은 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반려하는 삶이 가능할까?

생명을 돌보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선택지가 제한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에 접어들었다. 이제 더 적극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대화해봐야 할 때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반려동물진료보험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더 나아가 주거권, 이동권, 노동시간 등의 키워드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 엮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생명과도 반려하는 삶이 가능한 사회를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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