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ㅣ 서울시교육감
6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로부터 2013년 10월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지 6년 반의 기간이 흘렀다. 그동안 만리장성 같은 숱한 투쟁과 사연, 법적 쟁투가 있어왔다. 촛불 시민혁명을 배경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하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린 지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것은 박근혜 정부 때 부당하게 권리가 침해되고 박탈당한 사안들에 대해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고 원상복구하거나 관련 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전교조 법외노조는 대표적인 ‘지연된 정의’의 문제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아래 나는 이 지연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지금까지 네번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출범 초기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의 과정에서 법외노조를 푸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두번째 기회가 왔다. 2018년 지자체 선거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나는 당시 ‘이제야말로 단안을 내릴 시점이다’라고 생각했다. 세번째 기회는 ‘노동계의 적폐청산’이라는 취지로 2018년 8월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전교조 법외노조 해결을 의결하고 정부에 권고했을 때였다. 네번째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립을 위한 로비의 반대급부로 일제 강제징용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의 가처분 및 본안 소송에 개입했다는 것이 쟁점화되고 사법적폐에 대한 공분이 들끓었을 때였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의 신임을 얻어 180석을 가진 압도적 다수당이 되었다. 일차적으로는 코로나 국난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평가와 대안세력으로 야당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의해 가능했다고 보이지만, 더욱 근원적으로는 촛불 시민혁명의 유산, 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한 단계 높은 사회진보와 적폐청산의 요구가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존재함으로써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섯번째 기회를 우리가 마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 다섯번째 기회를 누가 현실로 만들 것인가. 세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총선에서 압도적인 재신임을 받아 절대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선차적인 개혁 법안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의 경로는 총선에서 표현된 국민들의 정신을 받아안아 문재인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대법원이 이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이 사안을 부의하고 5월20일 공개변론과 (이르면) 연내 판결을 앞두고 있다. 비록 국제노동기구(ILO)의 요구나 유엔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6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노조가 해직자 9명을 조합원으로 보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조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후진적인 노동‘행정’은 재정리되어야 한다.
나는 전교조에 대해 일부 보수 국민들의 시선이 부정적인 것도 사실임을 잘 알고 있다. 초기 참교육의 이상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는가 우려의 시선도 있다. 서울교육청과도 여러번 갈등했다. 그러나 전교조가 우리 교육개혁을 위해 담당해온 그동안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법외노조의 멍에는 타당하지 않다. 전교조는 1989년 대규모 해직의 아픔을 견디면서 참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싸워왔으며, 그 결과 성적지상주의적인 교육, 입시 위주, 체벌과 배제로 얼룩진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를 극복해가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학교에서 촌지가 사라진 것은 거의 전교조의 노력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설령 전교조에 대해 적극적 평가를 하지 않는 시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의 하나인 법외노조의 고통을 전교조가 계속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부당한 부정의에 대해 전임 집행부는 전면적 투쟁으로, 그리고 현재의 집행부는 조용한 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해왔고 시민들의 공감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응답하지 못했고 안 했다. 전임 사법부는 이에 ‘공범’처럼 가담해왔고, 신임 사법부는 아직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우리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와 집권정당과 사법부의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