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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에 명분을 줘선 안 된다

등록 2023-11-29 18:40수정 2023-11-30 11:15

교전 일시 중지 협상이 이뤄지던 지난 23일에도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교전 일시 중지 협상이 이뤄지던 지난 23일에도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왜냐면] 백수웅 | 변호사·‘테러를 프로파일링하다’ 저자

 우리는 다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두 차례 전쟁을 겪고 있다. 지구 건너편 일이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전쟁은 내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전쟁으로 인해 물류난이 발생했고 원자잿값의 상승으로 물가가 크게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또다시 곤두박질쳤고 국내 경제는 어려워졌다. 세계화로 인해 세계는 평평해졌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 몸으로 와 닿았다.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고민하는 지금, 지구 건너편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계속 중이다. 명분이 없는 전쟁은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전쟁에 나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합당한 지에 대해 제3자가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있다. 매일같이 뉴스에 보도되는 전쟁의 모습이 너무나 참혹하다. 가자 지구에 있는 병원이 폭격을 당해 의료인 등 500여 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 난민촌도 공격을 받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들은 물론 어린아이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각자의 명분 앞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제인도법 등 국제 규칙들도 유명무실화됐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경찰국가 노릇을 했던 미국은 이스라엘 편을 든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이 든다. 2001년 9월11월에 일어났던 테러 사건이다. 미국은 무고한 자국민을 상대로 공격을 강행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알카에다와 탈레반 집단에 복수를 다짐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강행했고 알카에다 세력을 손쉽게 소탕한다. 테러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이유로 국제인도법 등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적 내용은 무시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상황은 미국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강력한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IS)가 새롭게 등장해 알카에다를 대체했다. 이슬람국가(IS)는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다. 이슬람국가(IS)의 세력이 약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테러의 공포 속에 살아야만 했다.

미국이 당시에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 규칙을 준수한 채 전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대처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테러는 극단적 폭력 행위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국제 사회의 인권 원칙을 무시한 대응은 테러리스트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이 전쟁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폭력 행위에 명분을 제공하고 또다시 우리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지는 않을지 깊은 우려가 든다.

세계은행은 이란 등이 참전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지금보다 커질 경우, 유가가 15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현실화하면 나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평평해진 세상에서 지구 건너편에서 발생한 비극적 상황은 내 가족의 삶과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국제사회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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