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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위안부 외교 완전한 실패…가해국 아베가 되레 큰소리

등록 2017-01-09 15:22수정 2017-01-09 22:16

한-일 위안부 협상 4년 점검
박 대통령 한일정상회담 거부
아베 한발 물러서도 요지부동
“글로벌 동맹” 미, 일본손 들어줘
당국, 할머니들 접촉 않고 덜컥수
‘불가역적인’ 합의 10억엔 수령
일본 “합의 이행했다” 역공·으름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9일 낮 일시귀국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일시귀국시켰다. 연합뉴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9일 낮 일시귀국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일시귀국시켰다. 연합뉴스
‘외교 참사’로 끝나고 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12·28 합의는 해방 이후 한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몇 안 되는 거대한 외교적 도전이었다. 박근혜-아베 정부의 한-일 위안부 갈등은 크게 3막으로 진행됐다.

1막은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있는 ‘선 조처’를 요구하며 정상회담을 거부하던 국면이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군의 개입과 동원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를 검증하자며 맞섰다. 서전에서 승리한 쪽은 한국이었다. 전시과정에 일본이 저지른 여성인권 문제라는 인도주의적 관점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편드는 쪽은 없었다. 아베 총리는 결국 2014년 3월 “고노 담화 계승” 방침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2막으로 접어들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가 담화 계승 입장을 밝힌 뒤에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아베 총리와의 양자 회담을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경직적인 ‘한탕 외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2015년 봄이 되면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 원디 셔먼 미 국무부 사무차관 등 미국 고위 관료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하면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쉽다”고 말하는 등 한국의 태도를 공개 비난한다. 한국에 동정적이던 미 정부의 분위기가 점차 한국 ‘피로증’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은 아베 1차 정권 시절인 2007년 7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하원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2013년으로 접어들며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변화에 맞서 미-일 동맹을 강화해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결국 미국은 2015년 4월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일 동맹을 과거 ‘지역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한다. 미국이 일본 쪽으로 기울자 한국의 공간은 급속히 축소된다. 박 대통령은 식민지배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2015년 8월 아베 담화를 수용하고, 그 연장선에서 12·28 합의를 받아들인다. 이전엔 과도하게 경직됐고, 이후엔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유연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정세 변화 흐름을 읽지 못한 박근혜 외교의 파탄이었다.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소녀상 동상을 찾은 한 어린이가 동상의 옷을 여며주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방송된 <엔에치케이>(NHK) 프로그램 ‘일요토론’에 출연해 부산뿐 아니라 서울의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도 “한국 쪽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소녀상 동상을 찾은 한 어린이가 동상의 옷을 여며주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방송된 <엔에치케이>(NHK) 프로그램 ‘일요토론’에 출연해 부산뿐 아니라 서울의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도 “한국 쪽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그렇게 갑작스레 체결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박 대통령이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입버릇처럼 틈날 때마다 언급한데다, 합의 체결에 앞서 당국은 할머니들과의 접촉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당시 대부분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완승’은 거두지 못하더라도,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사과’와 관련한 양보를 조금 더 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할머니들을 충분히 설득해 ‘공감’ 분위기라도 끌어내는 등 적당한 ‘명분’을 축적한 뒤에야 결단을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예상을 뒤엎고 체결된 합의는 “불가역적”이라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표현, ‘소녀상 철거’에 대한 불분명한 해석 등을 떠안은 채였다. 일본에서조차 “너무 많이 이겼다”며 이후 실행을 걱정할 정도였다.

이후 3막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짐승의 시간’이었다. 아베 총리는 할머니들에 대한 사죄의 말을 해달라는 요청도, 편지를 보내달라는 한·일 시민사회의 외침도 “털끝만큼도”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언지하에 잘랐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가 ‘사정’하고, 가해자가 ‘거부’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8월 10억엔을 출연한 뒤에는 “일본은 합의를 이행했다”며 ‘도덕적 우위’ 운운하며, 한국 정부에게 ‘평화비’(소녀상) 철거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씻을 수 없는 과거 일본의 국가범죄인 위안부 문제가 현재 한국의 소녀상 철거 문제로 뒤바뀐다. 일본이 받아야 할 압박을 한국이 받는 형국으로 만든 것이다. ‘촛불 민심’을 이기지 못한 박근혜 정권이 쓰러지자, 아베 총리는 8일 “정권이 바뀐 뒤에도 합의를 시행해야 한다”고 서둘러 으름장을 놓고 있다. ‘박근혜-윤병세 외교 참사’가 후임 정권에까지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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