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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시장논리 벗어나 ‘인간이 목적’ 인식의 대전환 이뤄야”

등록 2014-09-09 20:39수정 2014-09-12 11:22

진노 나오히코 도쿄대 교수
진노 나오히코 도쿄대 교수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인터뷰] ① 진노 나오히코 도쿄대 교수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다음달 22~23일 열리는 제 5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제는 ‘사람중심 경제’다. 지난 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본과 시장에 포획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적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다. 국가와 기업, 사회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서로 협력하고 발전하는 새로운 경제를 모색하는 자리다. 포럼을 앞두고 국내외 경제계 원로들을 만나 사람중심 경제를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 필요한지 들어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전세계 노동시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연간 2167시간으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두번째로 길다. 반면 ‘한국인의 행복지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년)는 회원국 가운데 33위, 꼴찌에서 두번째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이며, 과연 해법은 없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간회복의 경제학>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진노 나오히코(68) 도쿄대 명예교수는 그 해법으로 ‘인간중심 경제의 회복’을 제시한다. 지난달 20일 도쿄의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기심에 기초한 시장의 논리가 공감에 기초한 공동체의 논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데서 현대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진정 인간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파악하는 인식의 대전환이라는 것이다.

시장 논리가 정의를 지배하며
현대 자본주의 여러 문제 발생
해법은 ‘인간중심 경제’ 회복

-올해 10월 열리는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의 테마가 ‘사람중심의 경제’다. 이는 자본과 시장 위주의 경제 구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장은 인간의 생활을 지탱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왜 시장에 의존하는가.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이 정말 합리적일까? 현재 자본주의 시장에선 비용으로 계측되지 않는 수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경제활동을 통해 자연은 ‘환경 파괴’라는 부담을 떠안는다. 이는 당장 시장에서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지만, 결국 자연재해 등을 일으켜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 여성의 가사노동과 같은 무상노동도 있다. 우리는 시장에서 비용으로 확인된 것만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는 전제로 경제활동을 하지만, 그것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비용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2007년 번역 출간된 <인간회복의 경제학>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중심의 경제는 어떻게 인간회복으로 이어질까?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육을 받았다. 예컨대 참고서는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매일 스스로 열심히 정리한 노트는 절대 잃어버려선 안 된다. 어린 시절 자전거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늦은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자전거는 얼마든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늦게 오면 가족들이 모두 걱정을 한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가족 간의 애정이나 친구들과의 우정 등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에선 모두가 우정과 애정이 피어날 시간을 잃어버린 채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본질적으로 왜 인간이 노동을 할까. 살아가기 위해서다. 살아가는 것의 목표는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게 지금 거꾸로 되어 있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게 인간회복의 경제학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만을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의 그릇된 인간관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해 왔는데.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아담 스미스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는 경제학 교수가 아닌 도덕 철학 교수였다. 그의 <국부론>에는 인간이 분업을 통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면 시장이 이를 조정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또다른 책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의 다른 본성인 공감(sympathy)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즉 인간은 경제적 목적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통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시장 경제는 민중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이기심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서로 이타적인 행동을 상호 수행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이기심과 공감, 정의라는 세 가지 동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기심만이 아니다.”

국가는, 가족간 연대원리를 적용해
인간다운 삶 위한 안전망 구축하고
새로운 산업 준비해 변화 유도해야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현대 자본주의는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장 논리가 공동체의 논리, 즉 공감의 논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에서 시장의 논리가 우위에 서, 공감과 협력의 논리를 밀어내버렸다. 1970년대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가 제창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경쟁원리가 가족과 공동체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장은 사회의 협력 원리가 있기 때문에 지탱되는 것이다. 영국과 달리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통해 사회가 시장에 개입해 시장을 더 유효하게 작동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경쟁력도 갖추고 임금도 높은 정합적인 경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가듯이 현대 사회에선 신자유주의가 더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인간이 주변부적인 가치에 머물고 있다. 이를 통해 나타나는 가장 극적인 현상은 이른바 저출산이다.

“출산율 등 인구 대책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은 인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을 인구라고 말할 때 우린 인간을 노동력이나 병력 등 수단으로 파악한다. 일본에선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인구 증가세가 멈췄고, 이제 하락 추세로 접어들었다. 그런 인구 흐름을 보이는 국가로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이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현재 조국에 태어나서 좋다’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개체 유지와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런 본능이 억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 문제를 논의하기보다 인간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인간중심의 경제를 만들 수 있는 대안으로 스웨덴 모델을 제시해 왔는데.

“현대 사회는 자연 자원을 대량 소비하는 중화학공업에서 지식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다. 즉, 인간의 근육보다 뇌와 같은 신경계통의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지식 사회가 될수록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해 살아가는 게 중요해진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스웨덴 모델이 적합하다고 본다. 1932년 사민당 정부 때 ‘국가는 가족 공동체처럼 조직되어야 한다’는 ‘국민의 집’ 사상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가족간 연대 원리를 사회 전체에 적용한 것이다. 이전의 공업 사회와 달리 지식 사회에선 지식을 서로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발전하지 않는다. 스웨덴을 흉내내자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 사회로 가는 갈림길에 서있다.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근린 궁핍화’ 정책을 펴는 것은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비극이 될 뿐이다.”

돈에 목적 둔 일본철도 계속 멈춰
한국의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
인간 중심으로 필요한 것 생각해야

-현재 일본 경제의 상황으로 주제를 바꿔보자. 인간중심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본 ‘아베노믹스’는 어떤가.

“아베 정권은 경제 회복을 위해 ‘3개의 화살’이라는 경제 정책을 내놓았다. 첫번째 화살은 금융의 양적 완화, 엔저 정책이다. 두번째 화살은 공공사업 등 ‘기동적인 재정정책’이다. 이 두 정책이 현재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번째 화살은 ‘민간 투자를 되살리는 성장전략’이다. 이는 세금 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정부의 법인세 인하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데, 혼자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의 기업들은 현재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돈이 많으면서도 쓰지 않는 것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깎는다고 의미 있는 투자가 이뤄지진 않는다. 오히려 거품 의존형 경제성장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일본은 철도가 발전한 나라지만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민영화 영향으로 철도가 멈춰서는 등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역으로 들어오는 일본의 고속열차. 연합뉴스
일본은 철도가 발전한 나라지만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민영화 영향으로 철도가 멈춰서는 등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역으로 들어오는 일본의 고속열차. 연합뉴스
-인간중심의 경제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뭘까?

“국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또, 다음 산업을 준비하기 위한 여러 여건들을 정비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어떤 산업이 지금부터 인간에게 필요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자 한명에게 의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각각의 지혜를 모아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틀릴 가능성이 적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새로운 인간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분석으로 들린다.

“한국의 대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과거로부터 누적된 (정경유착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곳으로 나뉘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공업화 사회에서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 선진국 기업을 따라 잡았는데, 앞으로는 지식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으로 나뉠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삼성전자는 정보기기 산업에서 성공했다. 그 다음으로는 예를 들어 의료 산업이나 자연의 재생 등 인류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지식 산업을 추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그런 성장전략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에겐 각자 모두 소중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새로운 산업에서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처럼 한국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이런 격차 사회에선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기 힘들다. 한국도, 인도도, 중국도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여부다.”

-한국에선 지난 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과도한 경쟁과 효율 지상주의가 불러온 참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사회에 여유가 사라졌다.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가 대응 능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맡은 바 사명을 강화하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다. (민영화 된) 일본의 철도는 지금도 계속 멈춘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원래의 사명인 철도 운행이 아니라 역의 매점이나 호텔 등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의 본질적인 기능을 잃게 됐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주류 경제학 맞서 ‘나눔 경제’ 주창…학문영역 넘어 현실참여도 적극적

진노 교수는 누구

진노 나오히코 도쿄대 명예교수(68)는 시장의 합리성 가설에 근거한 주류 경제학에 맞서 ‘인간중심의 경제’를 주창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다. 194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1990년부터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2009년 퇴임했다.

경제 운용에서 국가의 역할을 분석하는 재정학을 전공해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다수의 저서를 넘겼다. 현재는 일본 총무성 산하 지방재정심의회회장으로 활동하며 학문의 영역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현실 참여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중심의 경제’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과 1969년 닛산 자동차에 입사해 자동차 생산과 판매 현장에서 “진짜 노동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담 도중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스웨덴 모델을 강조하며 스웨덴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꺼내와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인간회복의 경제학>(2007년),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2013년)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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