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시아 여성을 보호하라”는 손팻말을 든 채 연대 행진을 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FP 연합뉴스
“어머니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한 싱글맘이었다.”
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8명의 사망자를 낸 연쇄 총격 사건의 한인 피해자 현정 그랜트씨의 아들 랜디 박(23)은 18일(현지시각) 현지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인 사망자 4명 중 현정 그랜트씨를 포함해 2명의 이름이 확인된 가운데, 유족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랜디 박은 “어머니가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가 걱정돼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 미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의 범행 동기를 “성 중독”으로 설명한 전날 경찰 발표에 대해서는 잠시 말을 고른 뒤 “헛소리(That’s bullshit)”라고 선을 그었다. 애틀랜타 경찰도 걷잡을 수 없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하루 만인 이날 롱을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범죄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이 3795건 접수됐다. 박씨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나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이제서야 “매우 다른 렌즈를 통해 그(인종 증오범죄) 문제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머니로부터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말을 들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문제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와 매우 가까웠다”며 “어머니는 춤과 파티를 사랑하고,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EDM 뮤지션) 티에스토를 사랑했다. 그녀는 10대 같았다”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회상했다.
16일 저녁, 박씨는 조지아주 덜루스 집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골드 스파’ 생존자의 딸이 전화를 해줘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았다. 경찰이 사건 현장 접근을 막고 있어서 아직 현장에도 가보지 못했다. 20대 초반인 그에게 이 상황은 너무도 “초현실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돌봐야 할 남동생이 있다”며 “극도로 슬프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슬퍼하고 싶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엔 자신과 동생 둘만 남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미국에 들어올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그는 온라인 모금사이트 ‘고펀드미'에 도움을 청했다. 박씨가 요청을 올린지 약 8시간만에 8300여명이 응답했고, 약 34만9천여달러(약 3억9500만원)가 모금됐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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