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시아계 여성들이 숨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 앞에 경찰과 차량이 서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지난 3월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20대 백인 남성이 마사지 업소 등을 돌아다니며 총을 난사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지만 수사 초기에 현지 경찰은 범인의 ‘성 중독’을 언급하며 증오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논란과 우려가 번졌다. 11일(현지시각) 마침내 현지 검찰이 이 사건 용의자에게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였다.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를 멈출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애틀랜타를 관할하는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대배심은 사건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에 대해 살인과 국내 테러리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풀턴 카운티 검사장인 파니 윌리스는 용의자 롱이 인종, 출신국, 성 때문에 아시아계 여성들을 겨냥했다며, 그에게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롱은 이미 총격 살인으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 검찰이 증오범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형량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특정 인종을 겨냥한 ‘증오범죄’임을 명확히 하는 것은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와 폭력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애틀랜타 아시안 대상 범죄 한인 비상대책위원회’의 김백규 위원장은 “이번 기소를 통해 미국 사회 전체에 아시안 대상 인종차별 범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며 환영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캠페인을 벌이며 인종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코로나19와 중국에 대한 여론 악화로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한국계 시민들도 곳곳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 하원은 다음주 표결 예정인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방지법안’을 통과시켜,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 미국 사회가 애틀랜타 비극과 계속되는 아시아계 대상 폭력 사건의 위험성을 직시하면서,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폭력의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해 인종의 벽을 넘어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