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6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 2곳과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 1곳에서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이 총기를 난사해 한인 여성 4명 등 8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당일 밤 수사 관계자들이 한 사건 현장 앞에서 조사하고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지난 3월 한인 4명을 포함한 8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조지아주 총격범에게 검찰이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11일(현지시각) 밝혔다. 사건 초기 경찰이 증오범죄와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라진 의미 있는 변화다.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대배심은 총격범 로버트 애런 롱(22)을 살인, 국내 테러리즘, 가중 폭행, 총기 소지, 흉기 공격 등의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
롱은 지난 3월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 두 곳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의 한인 여성을 살해했고, 그 직전에는 이곳에서 약 40여㎞ 떨어진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 업소 한 곳에서 총을 쏴 아시아계 여성 2명과 백인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날 공식 기소는 애틀랜타 한인 4명 살해에 관한 것이고, 체로키 카운티에서의 범행은 해당 지역에서 별도로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풀턴 카운티 검사장인 파니 윌리스는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롱이 애틀랜타에서 인종, 출신국, 성 때문에 4명의 아시아계(한인) 여성을 겨눴다고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윌리스는 롱이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 그에게 증오범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통과한 조지아주의 증오범죄법은 기본 혐의에 대한 유죄가 결정난 뒤에 검사가 증오범죄에 해당하는지도 판단할 것을 요청할 수 있게 한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롱이 ‘성 중독’을 갖고 있고, 성적인 유혹을 없애버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그의 진술을 그대로 공개하면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자 수사 당국은 증오범죄 적용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롱의 살인 등 혐의에 증오범죄가 추가 인정된다고 해서 형량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증오범죄로 인정되면 최대 2년형이 추가되는데, 롱은 살인만으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오범죄로 인정하는 것은 미국에서 최근 신고가 급증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와 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크다.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 등은 롱에게 증오범죄를 적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윌리스 검사장이 롱에게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한 점도 눈에 띈다. 윌리스는 지난해 검사장 선거 과정에서 “사형 구형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이번 사건에서 달라진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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