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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섹스 중독’에 무게 둔 경찰에 “증오범죄 가리려는 핑계” 반발

등록 2021-03-18 15:55수정 2021-03-21 14:44

경찰 “용의자, 인종적 동기 아니라고 주장”
아시아계·정치권 “성 중독으로 변명 말아야”
바이든 “아시아계 미국인의 걱정 알아…
법무부·FBI 수사 결과 기다리는 중”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차이나타운에서 전날 벌어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아시아 마사지 업소 연쇄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시안 혐오를 멈추라”는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차이나타운에서 전날 벌어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아시아 마사지 업소 연쇄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시안 혐오를 멈추라”는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 마시지 업소 연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용의자의 주요 범행 동기로 ‘성 중독’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 정치권과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건을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로 보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조지아주와 애틀랜타 당국은 17일 브리핑에서 용의자인 로버트 애런 롱(21·체포)의 범행을 증오범죄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체로키 카운티의 보안관 제이 베이커는 “롱은 인종적 동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며 “그는 스스로 성 중독이라고 여기는 문제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롱은 이들 장소(마사지 업소)가 자신이 그곳에 가도록 만들고, 그래서 없애버리고 싶은 유혹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경찰은 증오범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그러나 초동 발표에서 범행이 성 충동에서 비롯됐다는 용의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공개해 비판을 불렀다. 이번 사건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안 여성이고, 범행 대상이 된 마사지 업소들은 주로 아시안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다.

경찰의 발표 이후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가 “명백한 증오범죄”라는 성명을 내는 등 아시아 커뮤니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애틀랜타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연경씨는 ‘골드 스파’에서 총격이 벌어진 직후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다. 김씨는 <한겨레>에 “현장에서 직원들로부터 ‘범인이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며 총을 쏘고 있으니 빨리 가게 문을 닫으라’는 말을 들었고 증오범죄가 분명한데, 경찰이 사건을 다른 쪽으로 가져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스턴에서 교사로 일하는 이금주씨는 “당국이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회피하려 하면 아시아계 미국인과 대중의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직시하고 소수자 중 소수자인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게 하기 위한 법 제정과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치권에서도 아시아계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법 제정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발언에서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태미 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의원도 트위터에 “용의자는 아시아 여성들에게 집착해 그들을 쐈다”며 “증오범죄로 취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타이완계 테드 루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가능성 있는 하나의 동기가 다른 동기들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며 “음식 중독(집착)을 가진 살인자가 한국 음식점 종업원들만 쏜다고 가정해보라. 그건 거의 틀림없이 인종적 동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계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은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법 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서 롱의 “섹스 중독”을 언급한 보안관 베이커 또한 인종주의 논란에 휘말렸다. 베이커가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 코로나 맥주 로고 모양으로 “COVID19”(코로나19)라고 쓰고, “차이-나에서 수입된 바이러스”라고 적은 티셔츠들의 사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백인인 롱에 대한 수사에 이같은 편향성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이커는 특히 브리핑에서 “어제는 롱에게 아주 나쁜 날이었고 이게 그가 한 일”이라고 말해 이번 참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비판도 불렀다.

<시카고 트리뷴> 칼럼니스트 렉스 훕케는 ‘애틀랜타 총격 용의자의 나쁜 날과 백인 범죄 가리기’라는 칼럼에서 “백인인 베이커가 롱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고 일갈했다. 이 칼럼은 “성중독이라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와 여성혐오가 얼마나 깊게 뒤얽혀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날려버리는 쓸데없는 표현”이라며 “특히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폭력이 있을 때마다 여성혐오나 백인 우월주의, 극우 과격주의라는 본질을 흐리기 위해 계속 반복돼온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나는 지금으로서 살해범의 동기에 관해 어떤 것도 연결짓지 않겠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롱은 이날 8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로스앤젤레스/ 이철호 통신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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