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떠오르는 환동해]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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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이라는 구호가 뜻하는 대로 우선 물류를 통해 한반도, 아시아 그리고 유럽 대륙을 하나로 묶고, 연결된 유라시아 물류네트워크를 통해 산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러와 경제적 협력강화와 경제수준의 우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북한의 시장을 열어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열어간다는 합리적인 전략이다. 과거 남북간의 직접적 협력을 통해서 북한 문제를 마련해 보겠다는 정책과 6자 회담 등 주변국과 정치적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정책보다 진일보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 사업의 추진 궤적을 보고 있으면 이런 우려들이 근거가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뚜렷한 마스터 플랜이나 전략 없이 구호에 의한 피상적인 정책이 추진되거나, 일관된 거버넌스 체계 아래 단계적, 종합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부처,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개별 목적과 해석에 따라 단편적 정책 아이템을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지역개발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과거 중국은 점, 선, 면이라는 원칙을 통해 국토개발을 추진하였다. 최초 연안지역의 거점 도시들을 개발한 이후, 이를 기반으로 내륙지역과 물류망으로 연결하였고 나아가서 지역 전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정책을 펴왔다. 해당 정책은 큰 성과를 가져왔고 중국은 연안도시에서 물류네트워크를 통해 서부와 동북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중국 전체의 국토균형 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극동러시아의 개발 역시 점, 선, 면의 원칙을 지키면서 추진되어야 하고 해당 지역의 진출 방식도 같은 맥락을 따를 필요가 있다.
항만 배후지역 등에 대한 선행적 투자
극동 러시아 진출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는데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물류인프라 및 서비스 부족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단기간에 해소시키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항만 배후지역과 같은 입지에서 지역 발전, 화물 창출, 화물 불균형 해소, 비즈니스 관행 습득 및 개선 등의 과정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소규모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해당 항만배후 가공단지의 건설은 극동러시아 지역정부가 원하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반이 될 것임은 물론,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상호 윈-윈 전략인 것이다. 결국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극동러시아 항만주변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 진출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사업실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이해부족과 물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국토가 작은 우리나라의 경우 6시간 정도면 국토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물류체계가 구축되어 있으나 광대한 땅을 가진 러시아의 경우 국토 전체를 커버하려면 최소 15일 이상이 소요되는 물류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러시아의 물류체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 한계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 기업들이 현지에서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극동러시아 항만배후에 우리나라 전용 물류가공단지가 설립될 경우 현지와 우리나라에서 조달된 화물을 기반으로 완제품이나 반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또한 유라시아 전역에 우리 제품을 수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러시아 자원수출 화물에 대응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대체 화물의 창출을 뜻하며, 아울러 극동지역 이동화물의 물류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극동러시아에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후속으로 다수의 우리나라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고, 점차 내륙지역으로까지 물류인프라와 서비스 개선이 진행되는 ‘스필오버’(흘러 넘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항만에서 도시로, 항만도시에서 내륙지역으로 점차 이동하는 단계적, 공간적인 접근과 함께 물류와 연동된 가공형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와 철도화물 운송의 문제점
또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우리나라 철도를 연결하여 한반도에서 유럽으로 가자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제안하고 있는데 활용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물류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 수출입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해운과 비교했을 때 철도는 물류비와 화물처리 용량 부분에서 큰 난점이 있다. 물론 운송비의 경우 화물의 종류에 따라 고가의 화물일수록 철도 운송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철도와 해운간 시장이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화물처리 용량 면에서 컨테이너 기준으로 철도가 1행차에 100TEU를 소화할 수 있는 반면, 해운은 1만TEU급 선박의 경우 1만 TEU 이상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러시아 철도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자면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현재의 용량에서 최대 20%정도 밖에 증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처리할 수 있는 전체 화물은 1억 7,000만t 이하, 컨테이너는 80만 TEU 이하 밖에 안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기존 철도의 용량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자국 자원수출에도 더 유리한 신규 BAM(시베리아 횡단철도 북쪽의 바이칼 아무르간 철도)라인의 건설을 자국 물류인프라 투자 1순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철도망은 자국여객 1순위, 화물 2순위, 외국통과화물 3순위로 운영이 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우리나라 화물이 중국을 통과하는 중국횡단철도(TCR)를 이용할 때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이 바로 성수기에 중국 자국여객 및 화물에 대한 배차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외국통과화물을 후순위로 돌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성수기에 철도가 아닌 해운을 이용하는 이유도 가장 중요한 시기 자사의 화물을 수송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를 우려하여 상대적으로 운송 스케줄의 안정성이 보장된 해운을 찾기 때문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도 비슷한 문제에 노출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락가락하는 러시아 열차의 요율정책이다. 러시아의 화물운송 요율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다. 동서 이동 화물의 불균형과 함께 러시아 세관당국의 불합리한 통관절차와 이동 과정에서의 화물 유실 등도 간단치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엄청난 공사비를 수반하는 북한철도의 복원문제를 떠나서 러시아 철도의 활용성과 경제성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제안한 나진항 공동개발 부분도 과연 러시아 화물들이 나진항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꼭 수반되어야 한다. 나진항 1호 부두는 중국이 우선 사용권을 가지고 있고 2호 부두는 북한이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4호, 5호 부두는 중국이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당 부두 사이에 끼여 있는 러시아의 3호 부두는 배후로는 산을 등지고 있고, 좌우로 북한과 중국부두가 에워싸고 있어 확장가능성에 제약이 크다. 이런 상태에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출발한 철도가 북한을 거쳐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가야한다는 원론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필요한 경제성, 활용성 그리고 위험 통제 가능성 등에 대한 엄밀한 분석 후에 해당 계획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러 삼자간 물류협력체제의 구축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중·러 삼자간 물류분야 협력체계의 구축이 중요하다. 화물수급 면에서는 우선 극동러시아의 지역발전을 통한 화물 창출로 유라시아 대륙을 오고갈 수 있는 화물량이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중국 동북 3성의 넘치는 화물들을 극동러시아 지역으로 유인하여 극동러시아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주요 사안으로 대두된다. 그러나 현재 중국 동북 3성에서 극동러시아로 넘어오는 2개의 물류회랑인 프리모리예 1과 프리모리예 2지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세관당국의 구시대적인 제도와 시스템, 통관이후 러시아 항만까지를 연결해줄 물류인프라가 취약하며, 해당지역의 물류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러시아 물류기업의 횡포 역시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훈춘에서 장영자세관(러시아측 크라스키노세관)을 통과해 자루비노항까지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비용이 훨씬 더 운송거리가 긴 훈춘-대련항 루트를 이용할 때의 비용과 거의 같을 지경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관계로 물리적인 거리의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북 3성 화물이 극동러시아 항만 이용을 기피하는 이유가 되며, 반대로 우리나라 화물이 극동러시아를 통해 중국 동북 3성으로 가는데도 제약으로 작용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러 3국의 전향적인 복합물류운송시스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 2012년 한·중·일·러 동북아 4국은 이를 위한 협력의 틀로 복합운송국장급회의체를 구성해 두었다. 본격적인 활동은 크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이 협의체를 통해 한·중·러 삼국의 통과화물에 대한 제도적, 시스템적 정비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출발하거나 중국에서 출발해서 러시아 지역을 통과한 후 중국과 한국에 도착하는 화물에 대한 서류 통관 및 물류 정보 시스템 정도만 개선되더라도 해당 지역을 오고 가는 화물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은 시의적절하다. 또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경제적 관점에서는 물론, 안보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지에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우리가 추진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특수성,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상관관계, 물류부문의 특수성, 타국의 기간인프라 사업 참여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그리고 성공이 가능한 작은 사업부터 추진하고 이를 기반으로 좀 더 큰 사업 그리고 연안에서 내륙으로 옮겨나가는 방법으로 접근 방법의 순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제물류연구실실장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제물류연구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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